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균관대학교/기숙사 (문단 편집) == 개요 == 인문사회과학캠퍼스의 경우 협소한 캠퍼스와 서울 도심인 종로구에 위치한 관계로 인한 문화재 인접 및 고도제한으로 인한 건물 신축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숙사가 부족하다. 과거에는 아예 기숙사가 없다가[* [[성균관]] 부지에 있는 동재, 서재는 예외다.] 고시생들을 위한 기숙사[* 양현관]를 학교 밖에 짓기도 했다. 대학 당국은 학교 내 기숙사 설치가 어려워지자 학교 외에 대규모 부지를 마련하여 기숙사를 지으려고 했으나 주변 명륜동 주민들의 큰 반발로 인해 학교 근처가 아닌 학교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부지를 마련하여 기숙사를 지었다. 아래에서 언급한 원남동, 충신동 기숙사가 그것이다. 학교 내 및 학교 주위 토지매입이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학교 후문 인근의 명륜 3가는 조선시대 [[성균관]] 인접 및 4대문 안이라는 이유로 일찍부터 주거지역이 되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난개발]]이 이루어졌다. 일제 말 전차 노선의 [[성신여대입구역|돈암동]] 연장과 [[한성대입구역|삼선교]]의 개발로 혜화동 일대는 1950년대부터 낙후해졌으며, 지형적 요인에 의한 교통 불편[* 악천후로 교통정체가 심해지면 [[혜화역|혜화동로터리]]까지만 해도 30분 이상이다.] 및 주변 군부대의 존재로 인한 고도제한까지 겹쳐서 아파트형의 체계적인 개발이 불가능하다.[* 중앙학술정보관에서 명륜 3가와 돈암동, 창신동(한성대학교) 쪽을 바라보자. 창신동 쌍용아파트나 돈암동 한신, 한진아파트 또한 어떻게 보면 난개발의 일종이지만 적어도 그 지역은 고도제한이 적어서 저런 아파트 건축이 가능하다. 성대 후문 쪽은 고층 아파트 개발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주거지로서의 상대적 매력이 계속 하락하여 명륜 3가의 주택을 언제 구매했던 간에 타 지역 대비 가치 하락이 계속되어 왔다. 결국 이 지역 주택 소유주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과 동시에 성균관대 하숙/자취 이외에는 주택 수요가 전혀 없다 보니 '''필사적으로''' 여기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이며 어떻게 해서라도 성대 당국의 기숙사 건립을 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혜화초등학교가 구 혜화여고 부지로 이전하려 했을 당시 성균관대 당국이 혜화초등학교 부지를 인수하여 기숙사를 지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이유 및 학교의 의지 부족으로 실패. 참고로 혜화초등학교 부지는 이후 [[서울국제고등학교]]가 들어섰다. 창경초등학교 부지를 인수하여 학교 캠퍼스를 확장하고 연건 기숙사를 지은 [[서울대학교]]와 대비된다.] 자연과학대학의 경우 넓은 캠퍼스로 인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형편이다. 성균관대 인사캠 학생들은 제발 명륜동 일대 [[난개발]] 주거지를 대학 측에서 사들인 후에 싹 밀고 학교 부지로 [[재개발]] 하라고 아우성이지만 성대랑 삼성그룹에서는 자과캠만 이뻐하고 인사캠은 내놓은 자식 취급이다. 대략 7,000억 원 정도를 투입하면 명륜동 일대를 싹 재개발할 수 있다. 인구는 인사캠 쪽이 자과캠보다 40%나 더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