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성남고등학교(서울) (문단 편집) === 설립 ===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666265_STD.jpg]] 설립자는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원윤수]](元胤洙, 1887~1940)와 [[김석원]](金錫源, 1893~1978)이다. 원윤수는 남대문 잡화상, 과일위탁판매업을 운영하다가 일화광업(日華鑛業)을 설립하고 백년광산([[텅스텐]], 황해도곡산)을 개발한 친일 기업인이다. 백년광산에서 축적한 광산 선금으로 일본군에 군량미(쌀 3,000석)를 비행기 대금으로 헌납하는 등 [[최창학]], [[방응모]]와 함께 일제강점기 3대 광산재벌로 통했다. 김석원은 구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중일전쟁]]에 참전, 산시성 일대에서 2개 중대로 중국 국부군 1개 사단을 쫓아버리는 전공을 세워 한중일 삼국에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1938년에 훈장(금치 공3급)과 세트로 받은 상금을 보태 사업자 원윤수와 함께 학교를 설립했다. [[태평양 전쟁]] 때 학병 참전 권유 강연회를 다니기도 했다. 조선인 중에선 [[영친왕]], [[홍사익]]에 뒤이어 가장 높은 계급의 '''일본군 장교'''였다. 해당 사실은 대부분의 본교 선생님들께서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김경천]]과 [[지청천]] 등의 독립운동가들을 도왔고, 광복 후 자신의 친일 행적을 반성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길 거듭했기에 다른 친일파들보다는 그나마 낫다. 전쟁이 터지고 정신없이 밀려나던 초반에 중국군-광복군 출신의 [[김홍일(군인)|김홍일]] 장군을 찾아가 바로 수도사단장으로 임명되어 [[진천 전투]], [[포항 철수작전]] 등을 지휘해 승리했으니 공이 없지도 않다. 요약하자면, 친일 행적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후 반성과 함께 조국에 대한 공도 세운 인물인지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동작구청]]은 [[1994년]] 발간한 동작구지에 이들이 학교를 세운 이유는 "광복의 원동력이 될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민족학교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자각"때문이었다고 설명하였으나, 학교를 세운 당시의 [[매일신보]]에는 교장이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한 일본군 소장 아베 요시오였고, 육군사관학교의 준비교가 되도록 하는 특성을 가지고 설립되었다고 소개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