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덕대왕신종 (문단 편집) === 역사학적 검토 === 이 이야기에 대한 기록은 놀랍게도 '''20세기가 되어서야 처음 등장했다.''' 여기서 종을 주조할 당시 아이를 넣었다는 인신 공양 설화는 [[간장·막야|간장과 막야]]부터 시작해서 중국에서 이미 있었다. 그렇기에 이 설화가 [[보신각]]종에서 성덕대왕신종으로 넘어간 것일 뿐이란 주장도 나온다. [[선교사]] 알렌과 헐버트 등은 [[1900년]]을 전후해 에밀레가 보신각 종이라고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1927년]] 성덕대왕신종에 대해서도 유아공양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글이 [[동아일보]]에 실렸음이 밝혀지면서 에밀레종이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고 보기도 힘들게 되었다. 또한 조선 중기 평양 연광정 옆의 평양 종에도 비슷한 설화가 있음을 해당 기사에서 전하고 있다.[[http://veritasest.egloos.com/1912509|#]] 고로 더 자세한 고증이 요구된다. 종이 운다는 이야기는 [[오호십육국시대]] [[전량]] 때 세워진 [[중국]] [[간쑤성]] 무위(武威)시 대운사(大雲寺)에 있는 종이 대표적. 여기는 '낭아娘呀, 낭娘'(여자 혹은 어머니) 또는 '응당應當, 응당應當' 하고 운다고 한다(황인덕의 연구). [[당나라]]~[[오대십국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추정되므로 이런 이야기가 번역되어 같은 시기 한반도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전설이 [[혜공왕]]대의 상황에 대한 은유라고 해석한다. 어린 아들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고 전횡을 일삼던 혜공왕의 어머니 만월부인과, 혜공왕의 고종사촌이자 나이 어린 왕을 배반하고 왕위를 찬탈한[* [[삼국사기]]에서는 주어 없이 김지정의 난이 일어난 직후 왕이 시해되었다고 전하지만, [[삼국유사]]에서는 [[선덕왕|김양상]]과 [[원성왕|김경신]]이 왕을 시해했다고 보다 명확하게 나온다. 실제로는 김경신이 반란을 주도하여 혜공왕을 시해하고 명분을 위해 김양상을 강제로 즉위시켰다는 학설이 있기는 하나, 어떤 경우든 당대 사람들에게 김양상은 반란의 주도자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상대등 [[선덕왕|김양상]]을 비꼬기 위해서 만들어낸 전설이라는 것. 이 견해에 따르면 어떤 유형의 전설에서든 아이의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데, 이것은 혜공왕의 아버지인 죽은 [[경덕왕]]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런 게 사실이라면 왜 기록이 없느냐는 의문점이 있다. 물론 기록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다면 그 사실은 어떻게 전해졌으며, 전해졌다고 하더라도 사실이라고 믿을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역사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사료가 언제 작성되었가 하는 문제다. [[몽골 제국]]의 침입과 14세기 [[왜구]]의 습격으로 구전 전승을 이어나갔을 지역 사회가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초기 작성된 자료만 되어도 이 기록의 신뢰성을 높게 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역사학계에서 이 에밀레종 설화를 신라 당대의 일로 보는 학자는 '''없다'''. 종합 자료집 같은 경우에야 '이런 얘기도 있긴 한데...' 하는 식으로, 하도 유명하니까 언급이야 해 주겠지만 학술 논문에서 이런 소리하면 역사 자료 방법론을 무엇으로 배웠냐면서 게재를 거부당할 것이 뻔하다. 다만 국문학과나 민속학과라면 자료의 신뢰성 문제보다 내러티브의 문제를 중시하고 구전 자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아주 가끔 이런 논문이 통과된다. 물론 앞서 말한 자료 방법론의 문제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문학계나 민속학계에서 많이 차용이 되지 역사학계에서는 언급할 가치가 없는 논문으로 취급받는다. 당연히 진짜로 아이가 들어간 게 아니다. 성분 분석에 따르면 인간을 넣었을 경우에 당연히 있어야 할 성분(뼈의 칼슘, 인 등)이 없으므로 그냥 전설일 뿐이다.[* 다만 이게 '''유일한 근거'''는 아니다. 불순물 제거 과정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기 때문. 물론 후술하는 다른 이유들이 겹쳐있으니 아이가 들어갔다는 것은 [[허구]]로 보인다.] 게다가 주조 과정에서 종의 균열을 막기 위해서는 신속한 공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신종을 만들 때는 소형 도가니들로부터 동시에 주물을 붓는 방법을 사용했다. 여기에 아이를 넣으려면 아이를 균등하게 갈아버려서 도가니별로 넣어줘야 하는데 '''잔혹성도 문제이지만 제대로 된 종이 나올 리가 없다. 살생을 금기시하는 불교에서 종을 만들기 위해 생명을 희생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인신공양 전설은 워낙 흔하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