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덕대왕신종 (문단 편집) == 특징 == 현 소재지는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번지에 위치한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재청]]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는데, 이것은 한국의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유두를 사각형의 유곽이 둘러싸고 있다. 유곽 아래로 2쌍의 비천상이 있고, 그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연꽃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몸체 2곳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특히 종 입구 부분이 마름모의 모서리처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있다.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새긴 수법도 뛰어나, 1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오고 있는 문화재. 이 종이 내는 음색의 특성으로,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종의 안쪽을 대칭형 구조 속에 숨어 있는 미세한 비대칭성이 나타나도록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종을 치면 일정하지 않은 두께로 서로 다른 주파수의 소리가 주거니 받거니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반복되는 '맥놀이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성덕대왕신종의 아래에는 땅을 파놓은 울림통이 있는데, 종 위의 음관과 함께 한국 종의 고유한 특징이다. 울림통은 종이 울릴 때 나오는 간섭파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지금 설치된 울림통은 그 크기가 너무 작아 종의 진동수와 약 3Hz정도 오차가 있다고 한다. 크기를 키워야 된다는 이야긴데, 연구된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울릴 일이 없다 보니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종 위의 음관은 찢는 듯한 고주파음을 재빨리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성덕대왕신종은 종소리를 녹음해서 매시 정각, 20분, 40분에 틀고 있다. [[1992년]] 제야(除夜)에 서른세 번 종을 친 뒤 한동안 타종을 중단했다가, [[1996년]] 학술조사를 위해 시험으로 타종했다. 그 뒤 [[2001년]] 10월 9일, [[2002년]]과 [[2003년]] [[개천절]]([[10월 3일]])에 타종행사를 열었으나, [[2004년]] 말에는 보존에 문제를 일으키는 금속 스트레스 누적을 억제하기 위해 더 이상 타종을 금하고 있다. 금지 이후로도 관광객들이 종을 살짝이나마 쳐보는 일이 빈번해 당목도 떼서 바닥에 둔 상태다. 주기적으로 쳐 주는 것과 안 치는 것 어느 쪽이 보존에 유리한지는 전문가만이 알 것이다. 다만 한국의 보존기술은 반쯤 망가진 종을 완전복원해 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정도라는 사실은 알아두자. 아침저녁으로 종치면서도 천년이 넘도록 멀쩡했건만 나름대로 보존을 한답시고 최첨단 기술로 개발된 보존액을 발랐다가 되레 부식해서 이젠 치지도 못한다는 말도 있으나 녹슬지도 않은 쇠에 보존액을 굳이 바를 리가 없으므로 이건 그냥 진짜 종소리를 듣지 못하는 데 대한 악담이나 억측이다. 이후 [[2021년]]에 종 완성 1250주년을 기념하며 입체음향을 채록하기 위해 수 차례 타종하였다. [[https://news.jtbc.joins.com/html/572/NB11991572.html|#]] 종 표면의 명문(銘文)이나 그림 등을 자세하게 보고 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 2층 서화 코너에 가자, 탁본이 전시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