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룡 (문단 편집) == [[대한민국|한국]]과의 관계 == > '''저는 반(半)[[한국인]]입니다. (我是半個韓國)'''[* [[폴리스 스토리 2014]] 한국개봉을 앞두고 프로모션을 위해 한 말인데, 중화권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성룡을 골수 중화 - 애국주의자로 알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다. 어쨌든 성룡은 중화권 언론에서도 상당히 [[친한]]적인 위치로 알려져 있다. 성룡이 저 말을 할 법한 게 한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기도 했고, [[이소룡]]이 [[척 노리스]]와의 관계를 유지했듯 성룡 역시 [[취권]] 시절부터 한국의 영화배우인 [[황정리]]와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평생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성룡은 1980년대부터 일관되게 친한적 행보를 펴왔으며, 21세기 들어 일부 한국 팬들이 성룡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적 견해를 표하고 실제 이미지 하락도 불러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룡 본인의 친한적 입장은 딱히 변한 바 없었다. 성룡이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스타가 된 것은 1979년 한국 개봉한 영화 [[취권(영화)|취권]]부터로, 헐리웃 진출 이후 1998년작 [[러시 아워(영화)|러시 아워]] 등으로 월드스타가 되기 전인 1980년대에도 성룡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성룡도 이를 인지하고 한국에서 자신의 신작이 개봉될 즈음에는 방한을 하거나 혹은 국내 영화잡지와 독점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서서히 감소하기는 했지만, 1990년대에는 [[명절]] 시즌만 되면 성룡을 비롯한 홍콩 영화를 지상파 TV에서 자주 틀어줬다.[* 성룡과 비슷한 명절 단골 손님으로는 [[미스터 빈]]도 있었는데, 미스터 빈 단편들을 명절 때 MBC 등에서 틀은 적이 있다. 그외에 인터넷 이전 [[Prank]] 쇼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 한 캐나다산 코미디쇼가 MBC에서 <폭소앨범>이라는 제목으로 미스터 빈 못지 않게 방영했었다.] 이는 성룡의 인지도에 더해 주로 하는 영화 장르가 코믹액션류로 시청 재미가 있으면서도 유혈이 낭자한 스타일은 아니라 가족들과 보기에 상당히 무난한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명절=성룡 영화'라는 공식이 꽤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21세기 들어서도 케이블에선 종종 틀어준다. 1980년대 방영판에서는 주로 [[배한성]]이 성룡을 더빙했는데 《유성검의 대결》([[왕우]] 주연에 성룡 악역. 극장 개봉판의 왕우는 [[김태연(성우)|김태연]], 성룡은 [[유강진]][[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ttls55&logNo=222685697512&navType=by|#]]이 했었다. 재미있게도 MBC판 더빙이 [[배한성]](성룡) - [[양지운]](왕우) 콤비였다. 이후 재더빙때는 왕우를 안지환이, 성룡을 홍시호가 더빙했다.)이나 《권정》, 《소권괴초》, 《사제출마》 같은 MBC 방영판에서 연기했다. 참고로 권정과 사학팔보, 당산비권은 당시 유행하던 한홍합작 영화들인데 개봉 당시 더빙판이 존재한다. 권정 개봉판 및 KBS더빙판은 고 [[김태연(성우)|김태연]], 사학팔보는 고 [[이강식]], 당산비권은 고 [[박일(성우)|박일]]이 더빙을 했었다.[[https://m.blog.naver.com/rkseotks99/150068780398|출처]] 그러다가 1990년대 초중반부턴 [[장세준]]이 전담성우가 되면서,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나 《미라클》, 《용적심》, 《쾌찬차》, 《용형호제》 같은 영화에서 연기했다. [[장세준]]이 [[1997년]] 8월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불의의 여객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후에는 [[홍시호]]([[SBS]], [[MBC]]), [[김일(성우)|김일]]([[한국방송공사|KBS]])[* 다만 김일이 SBS 폴리스 스토리4에서 딱 한 번 맡은 적도 있다. 이후 그도 사망하면서 거의 홍시호가 전담하고 있다.]을 주축으로 가끔씩은 엑시덴탈 스파이에서 [[이재용(성우)|이재용]](KBS), 중안조에서 [[박조호|박지훈]](MBC) 등 다른 성우가 가끔씩 맡기도 했다. 그리고 《[[취권]]》은 거의 필수요소 수준으로 꼭 집어넣었다. [[무명]]이던 18~20살 시절, 대역 겸 배우 역할로 한국에 와 2년 여간 머물면서 한국 - 홍콩 합작 영화를 여러편 찍었다. 덕분에 박봉에 타국 생활이라 고생은 좀 했지만, [[한국어]]는 많이 늘었다고 한다. 한번은 명동 근처를 싸돌아댕기다 1970년대 군사정권 당시 시대상 경찰의 장발 단속에 걸려 머리가 깎일 뻔 한 적이 있었는데, 유창한 한국어 덕분에 외국인이라고 해도 잘 믿지 않아 난감했다고 한다.[* 물론 이후 한국어 하는거 보면 원어민 수준까진 아니라, 약간 과장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친구가 [[여권]]을 보여줘서 겨우 풀려났다고. 사족으로 홍콩 구룡반도의 '스타의 거리'에 있는 그의 동판을 보면, 핸드 프린팅과 함께 본인이 직접 쓴 4개국어로 사인이 적혀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어다. 후술되어있듯 한국인 여자친구와 8년간 사귀기도 했다. 사실 한국어 실력이 빨리 좋아진 것도 여자친구 덕분이 컸다고. [[MBC]]의 《영원한 따거 성룡》이란 프로에서 그의 여러 가지 면모를 보여줬다. 성룡이 젊을 시절, 한국은 [[홍콩 영화]]의 촬영지로 인기가 많았는데 홍콩은 영화 촬영할 배경도 한정적이고, 중국 대륙은 아직 개방 전이라 영화 찍기 힘들었던데다 한홍 합작영화는 많은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여러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본토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촬영할 때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이때 [[불국사]]나 [[창덕궁]] 등에서 로케 촬영을 하게 되면서 오래 지내게 되었고[* 이 시기 홍콩 쿵후 영화들을 보면 불국사가 소림사 간판을 걸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구 시대 무협 영화인 당산비권과 사학비권의 촬영지는 다름아닌 홍릉이다.] 다보탑과 석가탑 사이에서 와이어로 휙휙 날아가면서 액션을 벌이는 장면이 있기도 했다. 역사물이나 무협물을 찍으려면 [[동아시아]] 전통 건축물에서 찍어야 하는데 홍콩은 좁아서 그런 곳이 거의 없다보니 별 수 없이 한국 사찰을 빌려 촬영한 것이다.] 이 당시 한국 음식과 문화를 익혔다고 한다. 방송 중 식사로 [[육개장]]을 먹는데, 정말 빨리 먹는다.[* 여기서 성룡은 육개장의 건더기를 젓가락으로 건져 먹고, 그 뒤 밥을 살짝 적셔서 후루룩 먹는다.] 먹고 나선 휴지로 자리를 깨끗이 닦는다! 이 장면 후에 고아원 어린이들과 축구를 하고 [[짜장면]]을 먹는데, [[김치]]를 달라고 귀여운 투정도 부린다. 근데 자기가 좋아하는 [[배추김치]]가 아니라 생소한 [[열무김치]]가 나오자 잠깐 시무룩해하지만, 싫은 내색 없이 맛있게 먹는다. 또한 이 방송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콜렉션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한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할 적에 하루 종일 쫄쫄 굶은 날이 있었는데, 이날 밤에 거리를 하염없이 걷다가 길가에 걸터 앉아 소리죽여 훌쩍거리고 있던 와중 어떤 한국인 부부가 자신에게 육개장 한 그릇을 사주었고 그 때의 감동과 고마움을 잊지 못 한다고. 당시는 한국어가 많이 서툴 때라 그저 고마움의 표시만 했다고 하는데 그게 한국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고 아직까지도 고마워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예능에서 A(음식이름)vs육개장을 고르는 게임을 할 때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항상 육개장을 고를 정도다. 당시 [[정윤희]]와 열애설이 나기도 했지만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한국에서 영화 촬영을 하던 당시에 일반인 한국 여성과 사귀며 약 8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고 밝혔다. 후에 폐간된 영화 잡지 《로드쇼》와의 인터뷰에서는 그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했었지만, 여성쪽 집안의 반대로 결국 헤어졌다고. 그리고 1984년에 대스타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몰래 그녀를 다시 만났다고 했다. 이미 그녀는 [[유부녀]]가 되었지만, 서로 오래전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무릎팍도사》에서도 그 여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만약 그 시절에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계속 연락을 취했을 것이고 아마 결혼했을 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어도 이 장거리 연애 덕분에 능숙해졌다고 한다. 참고로 [[취권]]은 코믹한 무술을 만들려던 성룡이 [[술]]에 취한 채로 펼치는 권법을 만들면 어떨까 궁리하면서 탄생한 무술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당시 홍콩에서 활약했던 한국인 무술배우 [[황정리]]가 만든 무술이다. [[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4739|기사]] 한편, 신인 시절에 [[최무룡]]과 한국 - 홍콩 합작영화에서 대결을 펼친 적이 있는데, 훗날 《[[신화]]》에서 [[최민수]]와 대결, 보기 드물게 부자 2세대와 맞겨뤄본 사나이가 되었다. 그 밖에도 한국에서 촬영하거나 한국 - 홍콩 합작영화에서 여럿 나왔는데, 이 시절 악당 1, 2, 3으로 나오던 배우 가운데 [[조춘(배우)|조춘]]도 나와서 성룡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youtube(fqQ1A22r-fM)] 한국 노래도 제법 할 줄 알았다. 국내 예능에서 가요를 부르는 성룡(노래는 9분 50초부터). [[파일:sl.jpg]] 한국에 처음 방문했을 때, 당시 한국의 유명 개그맨인 [[이경규]]와 만나서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훗날 다시 방한했을 때 이경규가 '그때와 다르게 너무 늙어서' 성룡이 그를 못 알아봤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포즈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1989년 영화 《미라클》 홍보를 하러 한국에 왔는데, 당시 KBS2 방송에 나와 유쾌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내가 한국말 많이 잊어서 많이는 못해요."라고 웃으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나중에 MBC 주말예능에 특별출연했을 때도 한참 중국어로 얘기하다가 이경규가 "전에 오셨을 땐 한국말 잘하시더니?"라고 묻자 한국어로 "예전에는 잘했는데 지금은 못해요"라고 대답하여 웃음을 주었다.] 사족으로 비슷한 시기 홍보 겸 [[한국민속촌]]을 [[한복]]을 입고 돌아다녔는데, 마침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과 만나서 학생들이 성룡 사인을 받느라 왁자지껄한 적도 있었다. 참고로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만큼 흥행하진 못했던 일본에서도 몇 안되게 히트한 스타가 성룡이었다. 유튜브에도 당시 일본방송에 출연한 영상이 몇 남아있다. 2009년에 자신이 소유한 전 재산에 대해 [[기부]] 의사를 밝혔다. 이때 기자가 "아들이 있으면서 왜 물려주지 않고 기부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자, "내 자식에게 능력이 있다면 내가 물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벌 것이고, 내 자식에게 능력이 없다면 물려줘봤자 탕진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또한 기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김장훈]]에게 '''직접 한국어로 편지를 보내''' 그의 기부활동을 응원하고, 자신도 4,000만 [[미국 달러|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 4,000만 달러란 금액도 금액이지만, 애초에 김장훈은 타인에게 돈을 받아 기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 실제로 제의를 했더라도 김장훈 측에서 안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비공식으로 종종 내한하여 고아원에 기부를 하고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룡은 겉으로는 많은 기부를 하는 사람처럼 이미지 매이킹을 하고 있지만 정작, 2018년 9월 [[베이징사범대학]] 뉴미디어전파연구센터 등이 발간한 중국 연예인 사회책임연구보고서(2017 - 2018)에선 기부 금액이 0%로 당시 한동안 행적이 묘연했던 [[판빙빙]]과 함께 공동 꼴찌를 기록했다. [[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art_id=201809131053003&sec_id=540101|관련기사]]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907500053|관련기사2]]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1990년대 군입대를 피해 해외도피해 한국 입국을 금지당한 [[유승준]]의 중국 활동을 2000년대부터 밀어주기 시작하면서, 2010년에 개봉한 《대병소장》(大兵小將: Little Big Soldier)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그다지 이슈가 안됐지만, 스티브 유의 군입대 기피를 지적하는 이들 중에서 이런 부분을 들어 성룡까지 까는 이도 일부 있었다. 2011년 《[[런닝맨]]》 홍콩 특집에서 영상을 통해 출연한 적이 있었다. 미션 지령자로서 출연하여 유재석을 메뚜기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3월 2일 녹화본에서는 슈퍼주니어 [[시원(SUPER JUNIOR)|시원]]과 함께 실제로 출연했다. 그리고 해당 화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귀요미]]스러움과 입담, 예능감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멤버들과 잘 어울리며 웃음을 선사했다. 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체력이 딸리는지 후반부엔 달리지 못하고 걸어다니기도 했다. 의외로 유창한 한국어 발음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어려보인다는 말에 자신이 40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멤버들이 항의하자 '''"그럼 41?"''' 하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거기다 하하의 폰번호 요청에 "넌 여자 아님!! 여자만 됨!"이라고 하며 송지효를 보다가 월요남친의 견제에 한판 붙자며 결투자세를 취하는 등 출중한 예능감을 뽐냈다. 은근히 욱하는 기질도 있어, 유재석이 실수를 하자 괴성을 지르며 퍽하고 한대 치다가 다음턴에서 본인이 실수를 하자 "어 미안^^"이라고 사과를 하며, 유재석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알람토크 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불리한 질문을 하며 상대팀들을 탈락시키는 등 종횡무진 활약. 막판에 한국의 팬들에게 인사를 해달라는 말에 '''사랑해요 쪽쪽쪽쪽쪽!!''' 하며 키스를 날리는 모습이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귀요미]]하다. 1980~90년대만 해도 극장 개봉을 자주 하던 단골 스타였으나, 2000년대 와선 홍콩 영화 자체의 침체기와 더불어 한국에서도 한풀 흥행이 꺾이면서 《신해혁명》처럼 개봉도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2013년엔 권상우랑 합작으로 나와 화제가 된[* 권상우가 이소룡을 동경하는 학생역할로 주연한 말죽거리 잔혹사, 성룡을 동경하는 주인공으로 나온 청춘만화를 보고 눈여겨 봤다고 한다.] 《차이니스 조디악》 개봉 전에, 한국 방문 및 한국 지상파 방송에 나와 열심히 얼굴을 드러냈지만, 전국관객 27만에 그치는 기대 이하 흥행을 기록했다. 1979년 《취권》 당시엔 무려 서울 관객만 89만[* 당시에는 서울관객 20만도 대박이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당시 관객집계의 신뢰성은 감안해야 하지만, 저 정도 수치는 오차를 감안해도 엄청 많은 관객수다.]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이병헌]]의 결혼식에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는데, 그때도 유창한 한국어를 선보였다.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해피투게더(KBS)|해피투게더]]》에 성룡은 [[나르샤(브라운아이드걸스)|나르샤]], [[시원(SUPER JUNIOR)|최시원]]과 같이 출연하여 야간매점 메뉴 등극까지 성공했다. 다음 영화에 초청하겠다고 해서 출연진들을 포섭했으나, 사실은 그냥 구경 오게 해주겠다는 페이크였다. 성룡의 친한파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예로, 홍콩에 가면 할리우드처럼 명예의 거리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성룡의 핸드프린팅과 사인에는 한글로 '성룡'이라고 함께 적어 놓고 있다. 그리고 2014년 1월에는 《폴리스 스토리 2014》의 내한 레드카펫 행사에서 스스로를 半한국인으로 말하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1&aid=0002454027|#]] 2000년대에 중국에서 성룡이, 우리도 헐리웃과 한류를 넘어서자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가 한류 폄하 발언을 했다고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한밤의 TV연예에서 성룡 자택으로 직접 취재를 하러 가자 그들을 맞이하면서 철저한 오보이자 오해라고 반박한 적이 있다. 참고로 성룡이 김희선의 연기력에 대해 형편없다고 디스하고, 한류가 별볼일 없다고 말한 소위 한류 폄하 발언(2006)의 출전은 대만 언론이라고 한다. 다만 실제로는 반대로 성룡이 김희선의 결혼식에 축하 영상을 보내기도 했고, 환갑잔치에도 초대했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양호하다고 한다. 이때 재미있었던 점은 MC였던 서경석이 성룡팬인지 대놓고 취재화면 내내 성룡 쉴드를 쳤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그 나이대의 한국 남성들에겐 주윤발과 함께 어린 시절의 큰 추억이라는 방증이다. 사실 조금만 자세히 알아보면 폄하는 얼토당토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간에는 성룡이 "[[대장금]]은 마치 중국의 원조인 침술을 한국 것인양 우긴다"라고 말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 발언의 당사자는 성룡이 아니라 장궈리라는 배우로, 둘의 발언이 같은 기사로 보도되면서 마치 성룡이 한 것 마냥 소문이 퍼졌다. 성룡이 했던 발언의 요지는 "한국 배우에 홍콩인들이 열광하며 대문짝만하게 기사를 실어주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홍콩 영화판을 시장으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다. 이 정도로 현 홍콩 영화 시장이 무너졌으며, 우리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러다 홍콩 영화 진짜 싸그리 망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즉, 홍콩 영화인으로서 홍콩 영화의 몰락을 안타까워하고 자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지, 한류를 무시하는 발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소재의 다양성과 좋은 시나리오로 승부하려는 한국 영화에 비해 현 홍콩 영화는 스타 몇 명이 돌려막기식 출연을 하고 있으며 B급 영화 위주로 물량으로만 승부 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발언도 했다. 즉, 한류 폄하는커녕, 한국 영화계가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 나라 영화계를 대차게 까는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친한이고 아니고를 떠나 성룡이 자기가 속한 홍콩 영화계의 명운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2010년대 [[통영]]시 명예시민 겸 홍보대사였다. 덕분에 해저터널이나 [[미륵산]] [[케이블 카]]에 성룡이 직접 쓰레기를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쓰레기 좀 버리지 말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http://karaboard.com/m/bbs/board.php?bo_table=community&wr_id=1022502&page=1234|#]] 2014년 한국에서 자신이 프로듀싱한 7인조 보이그룹 [[JJCC]]를 출범했으나, 사실 한국에선 당시 홍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고 결국 활동도 거의 없어 해체된 듯 하다. 2014~15년에 성룡 영화들이 국내에서 우르르 재개봉이 이뤄졌다. 그런데 1970년대 영화 소권괴초나 비도권운산을 비롯하여 프로젝트 A, 쾌찬차, 폴리스 스토리, 대복성 등이 재개봉하는 건 좋은데 전국에서 1~2개 정도 상영관에서 1, 2번 정도 대충 상영한 것이 전부였다. 홍보도 거의 없었고 포스터도 정말로 대충 만들었다. 사실상 [[꼼수 개봉]]으로 대충 상영한 거다. 덕분에 관객이 무려 1~10명 수준이었다. 그나마 비도권운산이 전국 342명을 모았고 미라클이 전국 5천 명을 기록했다. 그런데 굳이 위안을 삼자면 성룡 영화 뿐만 아니라 오래된 재개봉 영화들이 대부분 이런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다. 물론 재개봉하여 되려 첫 개봉보다 대박을 거둔 재개봉 관객 50만에 가까운 전설인 [[이터널 선샤인]]이라든지 전국 30만 관객을 넘긴 [[타이타닉(영화)|타이타닉]]이나 [[올드보이(2003)|올드보이]] 같은 경우도 있지만 이는 상당히 특별한 사례이다. [[파일:00502839_20180209.jpg]] 2018년 2월 9일 평창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도 참여를 했는데, [[김여정]] 등의 북한 특사단이 온통 언론의 주목을 가져가서 크게 다뤄지지는 않았다. 사실 세월이 지난 것도 있고 정치 행보 관련 논란도 있어서 2010년대 성룡이 내한했을 당시 인기는 최전성기에 비하면 많이 내려간 편이긴 했다. 2024년 3월 1일 [[방탄소년단]] [[뷔]]와 함께 촬영한 'SimInvest' [[https://youtu.be/XUjSZfmSqh4|광고 영상]]이 공개됐다. [[https://x.com/kthyulove12/status/176341197935885961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