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룡 (문단 편집) === 활동 내력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03314#home|"공산당이 약속한 것은 100년까지 갈 것도 없이 수십년만에 반드시 실현된다."[br]"공산당의 위대함이 보인다. 나 또한 공산당원이 되고 싶다."]]''' >'''성룡''' 성룡은 홍콩 출신이지만, 21세기 들어선 가장 대표적인 친중 성향 배우 중 한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성룡이 친한파이고 홍콩 배우이던 시절부터 인기가 있었기에 그동안 국내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하진 않아온 경향이 있지만, 그는 조국 중국을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행보에 대해 심지어 독재적인 부분까지 긍정적인 발언을 제법 하는 편이라 이를 알고 놀라는 국내 팬들도 상당히 많을 정도다. 이러한 점 때문에 서방권이나 인권을 중시하는 단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다만 처음부터 친중공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파일:성룡_천안문.jpg]] 1989년 5월 30일, 성룡은 중국에서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시위]]를 벌일 당시 이들을 지지하는 의미로 홍콩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반독재 성향을 드러낸 바 있었다. 이 콘서트에는 [[주윤발]], [[유덕화]], [[매염방]], [[장학우]], [[알란 탐]], [[증지위]], 성룡 등이 참석했는데 이 중에서 알란 탐, 증지위, 성룡은 후에 친중으로 전향하게 된다. 특히 성룡은 노골적인 중국공산당 지지 성향을 드러낸다. 1997년 7월 1일, 홍콩반환 시점부터 성룡은 본격적으로 중국공산당과 연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가령, [[중국공산당]]으로부터 홍콩의 중국반환 기념콘서트에 출연해줄 것을 요청받은 성룡은 곧바로 참가해서 그가 직접 선곡한 용적전인(=용의 후예)이라는 제목의 중국과 중화민족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대로 접어들며 [[홍콩 영화]]의 흥행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중국공산당 정권에 유착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3월 28일, 성룡은 상하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대만총통선거야말로 세계 최대의 우스개였다. 1백년 동안은 그 얘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수치스런 일이었고 보기에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 잠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대만의 케이블 TV인 CTI를 타고 그대로 방영돼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을 분노케 했다. 대만 집권 민진당의 장쉬청(張旭成) 의원은 성룡의 정치적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그가 사과할 때까지 '성룡 영화 안보기 운동'을 촉구했다. 장 의원은 "성룡의 발언은 대만 주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으며 대만을 욕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3월 31일, 중국정부는 성룡을 중국 환경문화촉진회 부회장에 임명했다. 이 날은 그가 대만 비판발언을 한지 3일 뒤였다. 성룡이 중국에서 공식 직책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중국 환경문화촉진회는 외형상 비정부기구(NGO)이나 판위에(潘岳) 중국 환경보호총국 부국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사실상의 정부산하기구다. 성룡은 "환경문제는 모든 사람이 관련된 일"이라며 "환경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기꺼이 부회장직을 수락했다. 2005년 중국 본토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중국공산당]]과 가까워진 성룡은 그들과 협력하며 사업을 추진했고, 공산당은 홍보를 위해 그의 인기를 이용했다. 이후 성룡은 중국공산당 창당을 기념하는 노래 <조국>을 내놓으면서 노골적으로 공산정권을 찬양하기 시작했고, [[인민해방군]]과 [[문화대혁명]]을 찬양하는 이야기를 오페라로 리메이크해 공산당 홍보에 열을 올렸다. 2008년 성룡과 [[중국공산당]]의 협력은 그가 [[2008 베이징 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때는 중국정부의 [[티베트]] 유혈진압사태에 대한 반발로, [[티베트 독립운동]] 시위자들이 티베트의 인권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 봉송되는 성화를 끄려고 하는 등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자 성룡은 '''"그들은 아무 이유없이 TV에 나오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한다. 성화봉송을 막으려하는 티베트 독립요구 시위자에겐 따끔한 쿵푸의 맛을 보여주겠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각종 시사평론가들의 [[풍자]]와 [[만평]]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2009년 4월엔 중국 [[하이난]]에서 개최된 경제 포럼의 자리에서 [[중국 정부]]의 미디어 규제와 영화의 검열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을 때, 성룡은 홍콩민주화 운동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자유를 갖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중국인은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지나친 자유가 지금의 홍콩의 모습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대만도 매우 혼란스럽다. 통제되지 않으면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할 것이다."''' 라는 발언을 해서 특히 [[홍콩]]이나 [[대만]] 등 민주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지역으로부터는 더 강하게 비난을 받았다. 이때 당시 홍콩 신문 [[빈과일보]]는 "성룡은 비겁한 노예" 라는 제목의 톱기사로 그를 비난했다. 200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기념행사에 참가했던 성룡은 이날 행사에서 중국 가요 국가를 부르면서 강성한 나라가 있어야 부유한 백성이 있게 된다고 노래했다. 행사 직후 중국 관영 인민망 등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는 나는 국적이 없는 중국인이었다. 중국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니었다.면서 우리 조국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고 나는 중국인이 됐다.며 감격스러운 느낌을 전했다. 2010년 8월 [[필리핀]]에서 버스 인질로 납치돼 살해된 8명의 홍콩인들에 대해, "이런 일은 전세계에서 항상 일어난다. 걱정말라! 우리는 미워하지 않는다." 라는 글을 올렸는데, 당시 이 말에 홍콩시민들은 분노하여 성룡을 '냉혈인간', '홍콩의 수치'라고 불렀다. 당시 네티즌들은 성룡이 '[[필리핀]] 사업' 때문에 해당 발언을 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실제로 성룡은 자신의 블로그에 "필리핀 지역 사업을 시작했으며, 중국정부 고위 관리가 이를 수락했다." 고 게시한 바 있다. 2012년 12월, 성룡은 시위 문화를 비난하면서 한국을 언급해 구설에 올랐다. 중국 남방일보(南方日報) 자매지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시위하면 한국을 떠올렸지만 지금은 홍콩이 시위의 도시가 됐다. 사람들은 중국과 중국지도자들과 모든 것에 불평하고 모든 일에 항의하고 있다. 당국이 어떤 이슈는 시위할 수 있고, 어떤 문제는 시위할 수 없는지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시위를 비난했다. 성룡의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칼럼니스트 겸 문화비평가인 량원다오(梁文道)는 "성룡은 홍콩인들이 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당국이 하는 일은 모든 것이 옳은 일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고 비난했다. 또한 전 홍콩 입법의원인 위러웨이(余若薇)는 "만약 정부가 영화인들에게 어떤 영화는 만들 수 있고 어떤 영화는 만들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영화계가 수치스러워해야 할 실언이다."라고 지적했다. 2012년 12월, 성룡은 홍콩 봉황TV에 출연해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라고 발언해 눈길을 끌었다. 부패에 대해 말하자면 전 세계에서 미국만한 부패국이 또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라며 금융위기도 미국의 실패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지난 10년간에 비로소 진정한 성공을 이뤘다. 중국 내부에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인식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해외에 나가서는 중국이 위대한 나라임을 알려야 한다. 중국의 문제를 외부에 알릴 필요는 없다. 강해진 중국을 사람들이 걸고 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https://www.google.com/amp/s/www.news1.kr/amp/articles/%3f968088|#]] 2013년 3월, 성룡은 중국인민 정치협상회의 위원(=정협위원)이 됐다. 줄여서 '인민정협'이라고 불리는 중국인민 정치협상회의는 공산당 및 기타 정당, 각 단체, 각 정계의 대표로 구성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책자문기구다. 중국은 예전부터 성룡같은 대중에 친숙한 유명 연예인이나 체육인을 정협위원으로 위촉해 공산당 이미지 개선에 활용해왔다. 2014년 9월 '[[우산혁명]] 시위'에 대해서 자신의 [[웨이보]]에 "최근 홍콩에서 일어난 사건(=우산혁명)으로 3,500억 홍콩달러(한화 약 48조 4,0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겪었다는 뉴스를 보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성을 되찾아 달라! 강성대국(=중국)없이 번성하는 곳은 없다." 고 말했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25EC%2584%25B1%25EB%25A3%25A1%25EB%25A7%2588%25EC%259E%2589%25EC%25A7%2580%25EC%259A%25B0oto.jpg]] 2015년 12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남부 분원 완공 기념식에 [[마잉주]] 당시 총통 등과 함께 참석했다. 중화문화의 총본산으로서 국립고궁박물원의 위상[* [[장제스]]가 [[대만]]섬으로 떠날 때 진귀한 문화재를 수송선 1척 채울 만큼 챙겨가서, 문화재 규모나 양이 엄청나다.]이나 마잉주 정부의 친중국적 [[양안관계]] 정책 등을 고려한 듯 보이지만, 과거 대만의 민주주의를 비하했던 전력을 생각하면 엇갈릴 수 있는 행보.[* 물론 마잉주의 경우 당시 [[중국국민당]] 소속 주석으로 민진당과 달리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기 때문에 크게 엇갈리진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국민당도 "중국 대륙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하나의 중국]]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라 공산당과 입장이 100% 일치하진 않는다.] 덤으로 [[http://nowformosa.blogspot.tw/2015/12/NATIONAL-PALACE-MUSEUM-ASIAN-ART-AND-CULTURE-MUSEUM.html|진품이 아닌 모조품을 분원에 부조 작품으로 기증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19년 6월에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 조례 개정안을 둘러싼 반정부시위가 심해졌을 때 성룡은 16년 만에 낸 그의 첫 앨범 <나는 재키 찬이다>(I Am Jackie Chan)의 쇼케이스 행사 홍보를 위해 대만을 찾았다. 이 행사에서 홍콩시위와 관련된 대만언론의 질문에 성룡은 "홍콩에서 큰 시위가 있었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나는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대만언론은 2014년 9월 우산혁명을 공개 비하한 성룡이 그것의 10배에 달하는 규모의 시위를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2019년 8월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오성홍기]]는 전 세계인의 존경 대상입니다. 홍콩은 제가 태어난 곳이고 고향입니다만 중국은 제 조국입니다"[[http://news.jtbc.joins.com/html/598/NB11866598.html|라고 발언]]한 바 있고, 자신의 [[웨이보]]에 자신은 [[오성홍기]]의 [[https://www.yna.co.kr/view/AKR20190814057900083|수호자]]라고 밝혔다. [[호가]], [[우징]], 심지어는 홍콩 국적 아이돌 [[잭슨(GOT7)]][[https://www.weibo.com/jacksonwangG7?is_hot=1#_loginLayer_1570922901502|#]], 대만 국적의 [[라이관린]][[https://www.weibo.com/laikuanlin?is_hot=1#_loginLayer_1571159833289|#]] 등의 많은 중국 활동 중화권 탑스타들이 같은 리포스팅(8월 4일자)을 했다.[* 성룡이야 본심이겠지만, 다른 연예인들은 울며겨자먹기로 포스팅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관제 리포스팅을 거절하면 중국 정부에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만 해도 독재자 찬양가 만들지 않았다고 방송 활동 금지당한 [[신중현]] 사례가 있다.] 2019년 10월, 중국이 국경일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성룡은 "중국은 그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뤄냈다. 중국이 재채기를 하면 전체 지구가 흔들린다. 그리고 과거 중국을 무시했던 헐리우드 제작자들도 이제는 중국시장의 입맛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중국이 싫어한다'는 한마디면 그들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2019년 11월 8일 [[남중국해]] 분쟁에서 중국의 영유권을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분쟁 당사자인 [[베트남]]에서 [[입국 금지]]를 당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1&oid=421&aid=0004294738|#]] 2020년 2월 16일, 홍콩도 코로나로 비상이라 시민들이 생필품 사재기까지 할 정도로 혼란스럽던 상황에 성룡은 증지위, 알란탐, 노혜광 그리고 홍콩 시위 때 강경 진압을 주도한 친중파 경찰청장 크리스 탕과 함께 연회를 즐겨서 비난을 받았다. 크리스 탕은 "제가 경찰이 된 것도 다 성룡 형님을 보고 배운 덕입니다"라고 말했다.[[https://www.ichannela.com/news/main/news_detailPage.do?publishId=000000189664|#]] 2020년 5월 28일, 중국 전국인민 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에서의 반체제 활동이나 외국의 개입을 막는 국가보안법 도입을 결정하자 성룡은 자신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의 지지성명을 받아 중국에 전달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뜬금없이 이소룡이나 장국영 등 이미 한참 전에 사망했거나 반대 성향이었던 배우들 이름까지 적어 손가락질을 받았다.[[https://sputnik.kr/news/view/2704|#]] 2020년 5월 30일,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관해 배우 증지위, 리자 왕, 제작자 임건악, 황백명 등 영화계 인사들과 함께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국가안보 수호가 홍콩에 중요하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홍콩 보안법 제정을 지지한다. 이번 법제정이 국가안보의 구멍을 막고 문화예술계의 정상적인 창작의 자유와 발전 공간을 보장하길 기대한다." 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1&oid=015&aid=0004350612|#]] 2021년 7월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해 [[중국공산당]]을 향한 찬사를 쏟아냈다. 그는 나는 중국공산당의 위대함을 볼 수 있다. 공산당의 약속은 100년도 안 되어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며 나는 공산당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개최된 심포지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연설에 대해 중국 영화 관계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참고로 이 말만 보면 의외로 성룡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공산당 당원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입당하고 싶다는 발언만 했을 뿐 아직 입당은 못했다. 진성당원만 받다보니 생각보다 입당 절차가 까다로워 사생활 논란 등 문제가 많은 성룡의 입당은 쉽지 않다. 이후 실제로 입당할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455632?sid=104|#]] 2022년 7월 1일, 홍콩반환 25주년 기념 축하행사에서 중국 전통 의상을 착용하고 큰 북과 함께 등장한 성룡은 [[쿵푸]] 무대를 꾸미며 중화의 힘을 열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