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룡 (문단 편집) === 여자 문제 === 성룡은 친근감 있는 외모로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중화권에서는 숱한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는 스캔들 메이커로 유명하다. 성룡의 스캔들 리스트는 일명 성룡의 여인들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해를 거듭하면서 거의 매년 한 명씩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난잡한 여자 문제로 인해 그에 대한 평이 좋지 않다. 오죽하면 성룡의 본명인 房仕龍(방사룡)을 비꼬아 [[섹스|房事]]龍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였으니... 언론에 공개된 사실들을 보면, 1970년대 한국 홍콩 합작영화 촬영이 빈번했던 시절, 17살~18살의 성룡은 한국에 거주했었다. 그는 당시 통금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에게 반해 말을 거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와 8년간 교제했다. 그리고 한국인 여성과 만나고 있는 도중에 미설(米雪, 미쉘 임)이라는 여배우와도 만나 8년동안 사귀며 양다리를 걸쳤다. 그러니까 [[1970년]]~[[1979년]] 사이에 2명의 여자를 각각 8년씩 동시에 만났던 것이다. 결국 한국인 여성과는 만나는 횟수가 줄면서 헤어졌다. [[1979년]] 성룡은 미설(米雪, 미쉘 임)과 사귀다가, 미국에서 가수 [[등려군]]과 만나게 되었고 등려군과 사랑에 빠져 양다리를 걸친 끝에 미설을 차버렸다. 그 배신감에 미설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 아직까지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 [[1981년]] 그렇게 등려군과 사귀다가, 여배우 임봉교와 만나 또다시 양다리를 걸쳤다. 임봉교는 1970년대 청순미로 이름을 날렸던 대만의 하이틴 스타로[* 집안의 가난 때문에 학교를 자퇴하고 19세부터 영화에 출연했다.] 당시 문맹이었던 성룡에게 대본을 읽어주면서 그와 사랑에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1982년]] 성룡은 임봉교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자 등려군을 버리고 임봉교와 결혼했다. 성룡이 결혼할 것이라는 뉴스가 전해지자 2명의 팬들이 자살하는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에 성룡과 임봉교는 미국 LA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리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문제는 임봉교가 이제 갓 스타덤에 오른 상태에서 성룡의 아들 방조명을 [[혼전임신]]한 탓에 배우로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은퇴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1984년]] 성룡은 임봉교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73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일본의 원조 아이돌 출신 탤런트, [[https://ja.wikipedia.org/wiki/%E6%B0%B4%E6%B2%A2%E3%82%A2%E3%82%AD|미즈사와 아키]]'와 불륜을 저질렀다. 이때가 아들 방조명이 2살 때였다. 그녀는 일본 방송사 리포터로 스페인의 '[[쾌찬차]]' 촬영 현장에 가게 되었고 당시에 유부남이었던 성룡을 취재하다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1년간 사귀다가 헤어졌다. 그녀는 어느 버라이어티쇼에 나와서 "성룡은 친절했고 특히 몸이 좋았던 남자" 라고 회고했다.[[https://www.ajunews.com/view/20131204155933273|#]] [[1985년]] 영화 '[[폴리스 스토리]]' 에 같이 출연한 [[장만옥]]과 염문에 휩싸였다. [[1986년]] 영화 '[[용형호제]]'에 같이 출연한 [[관지림]]과 열애설이 났다. [[1987년]] 대만 출신의 여성 액션 스타 [[호혜중]]과 열애설이 돌았다. 성룡과 호혜중은 [[복성고조]] 등 복성 시리즈에서 함께 출연한 바 있고 성룡은 호혜중의 단독 주연작 패왕화(1988)의 제작자였다. 패왕화는 성룡이 제작에 참여한 액션 영화들 중 유일하게 성룡 본인이 감독을 맡거나 영화에 출연하지 않은 작품이다. [[1989년]] 여배우 [[이가흔]]과 열애설이 돌았다. 특히, 이 두 사람이 1991년에 자동차 경주장에 함께 나타나면서 소문이 달아올랐다. [[1993년]] 여배우 [[오가려]]가 성룡과 껴안고 뽀뽀하자 사람들은 그들이 사귀고 있다고 의심했다. [[1997년]], 성룡은 자신보다 18살 어린 미인대회 출신 여배우 [[오기리]](吳綺莉, 우치리, 일레인 응)와 모임에서 만나 불륜을 저질렀다. 그는 외모가 뛰어난 오기리에게 즉시 매료되었다. 성룡은 아내와 이혼하고 너와 결혼하겠다. 라는 말로 그녀를 유혹했다고 한다. 참고로 성룡은 1954년생, 등려군이 1953년생, 임봉교도 1953년생, 오기리는 성룡의 조카뻘인 1972년생이다. 성룡의 아들 방조명이 1982년생이라 오기리는 방조명보다 10살 누나이다. [[1999년]] [[2월]], 성룡과 오기리의 불륜이 수면 위로 불거졌다. 당시 성룡은 이를 부인했지만 동년 10월, 오기리가 성룡의 딸을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며 부적절한 관계가 폭로되자 결국 그도 불륜을 인정했다. 이 때 성룡이 친구들에게 오기리의 유혹에 넘어가 생각지도 않은 잠자리를 함께 했다고 토로했다는 사실이 보도돼 빈축을 샀다. 결국, 오기리는 그 해 11월 19일, 딸 오탁림(吴卓林, 우줘린, 에타 응)[* 오(吳)의 광동어 발음.]을 사생아로 낳았다. 오기리에 의하면 성룡에게 자신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성룡은 그 즉시 오기리와의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탔다고 한다. [[1999년]], 신인 여가수 [[용조아]]가 성룡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그의 개인용 세단으로 이동하던 사진이 찍힘으로써 두 사람의 열애 사실이 들통났다. [[2000년]] 성룡은 미스 홍콩 출신 여배우 [[향해람]]과 염문에 휩싸였다. 성룡이 매번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촬영한 후 홍콩으로 돌아오는 이유가 향해람의 집을 방문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2001년]] 성룡은 영화 '[[러시 아워 2]]'를 촬영하면서 [[장쯔이]]와의 염문설에 휘말렸다. 언론들은 성룡이 장쯔이의 생일 파티에서 키스를 하며 서로 다정히 마주 앉아 포도를 먹여주고 있는 사진을 보고 앞다투어 스캔들을 퍼뜨렸다. 또한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 장쯔이와 손깍지를 끼고 등장해 또 한번 구설수에 올랐다. [[2002년]], 성룡의 영화 [[나이스 가이]]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연예계에 데뷔한 대만의 '인공미녀'로 불리는 배우 [[이정의]](李婷宜)가 성룡과 술집 홀에서 서로 담소를 나누다 연락처를 교환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2003년]] [[3월]], 영황 엔터테인먼트가 개최한 파티에 성룡과 여배우 [[정희이]]가 함께 참석했는데 정희이의 손목에는 성룡이 선물한 10만 홍콩달러(한국돈: 1,500만 원)의 명품 시계가 걸려있었다. 비록 다른 여자 연예인들에게도 손목시계를 선물한 적이 있는 성룡이지만, 정희이는 '성룡의 애인'으로 불렸다. [[2005년]]에 성룡의 영화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대한민국 연예인 [[김희선]] 역시 [[https://www.dispatch.co.kr/1435|영화 촬영을 계기로 성룡과 잠시 사귀었다는 의혹이 있다.]] 상기한 뉴스의 껴안는 장면 외에도 [[https://cn.depositphotos.com/238069686/stock-photo-south-korean-actress-kim-hee.html|성룡이 김희선의 옆이마에 키스를 하는 등]] 당시 두 사람은 여러모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스킨쉽을 자주 하였다. [[2011년]] [[2월 22일]], 중국매체들은 성룡과 여배우 [[서정뢰]]가 차 안에서 키스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며 두 사람의 스캔들이 불거졌다. 매체들은 "최근 성룡과 서정뢰가 차 안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는 순간이 포착됐다. 성룡은 서정뢰와 식당에서 나와 차에 올라탄 뒤 진한 키스를 나눴다"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성룡은 "평범한 친구일 뿐, 사진 속 키스는 단지 굿바이 키스였다"고 밝히며 스캔들을 부인했다. 서정뢰 역시 자신의 웨이보에 "이게 어디를 봐서 '격렬한 키스'를 하는 것처럼 보이느냐? 정말 사람들을 잘도 속인다"라는 말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1년]] [[4월 7일]], 중국 광저우 '다양왕' 등 중화권 매체들은 "성룡이 베이징에 있는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벌인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미녀 배우 "린펑"의 볼에 키스를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성룡은 생일 파티에 참석한 이들을 위해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서정뢰식 키스법으로 키스를 하겠다"며 옆에 있던 린펑에게 기습 키스를 했다. 이에 린펑은 싫지 않은 듯 웃음으로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성룡은 '천녀유혼'과 '초한지'의 히로인 [[유역비]](劉亦菲)와 공사석을 불문하고 스킨쉽을 하는 등 연인 사이라고 의심할 만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이에 대중들 사이에서 둘의 관계가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성룡은 베이징에서 펼쳐진 모터쇼에 등장해 유역비의 허리에 손을 감아 자신에 바싹 달라붙게 한 채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에 홍콩 언론들은 "두 사람은 이전에도 자선행사 등에 동반하면서 친밀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성룡이 유역비를 껴안는 건 다반사고 귀에 얼굴을 대고 속삭이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연인 사이로 의심할 것이다." 라고 보도했다. [[2014년]] [[3월 17일]], 베이징 평화우애콘서트 발표회에서 성룡은 게스트로 나온 유명 여자 아나운서 춘니의 목덜미를 잡고 볼을 비비는 행동을 노출해 또다시 중화권 언론과 온라인을 달궜다.[[https://www.wikitree.co.kr/articles/165694|#]] 춘니는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성룡의 접촉을 피하지는 않았다. 처음엔 '성룡이니까, 저 정도야...' 하던 중국 네티즌들도 시간이 갈수록 '지나치다', 또는 '상대가 유부녀라 더욱 문제 된다'는 쪽으로 비난 수위를 높여갔다. [[2015년]] 성룡과 [[판빙빙]]이 서로 진한 스킨쉽을 하는 장면이 파파라치에 포착되며 중화권 대중들에게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는 설이 돌았다.[[https://newsfeed.dispatch.co.kr/625898|#]] 두 사람은 2009년 <신주쿠 사건>이라는 영화에 같이 출연한 바 있다. 스캔들이 터지자 판빙빙은 자신이 성룡과 연인 사이라는 소문을 강력히 부인했고 얼마 후인 [[2015년]] [[5월 29일]], 배우 리천과의 열애를 공식 발표했다. [[2022년]] [[3월 9일]], [[중국남방항공]] 소속으로 알려진 한 여자 [[스튜어디스|승무원]]이 자신의 계정에 성룡과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서 성룡은 승무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손으로는 엄지를 치켜들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사진과 함께 성룡과 만났던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덧붙였다. 그녀는 성룡에 대해 "정말 나이스하다. 사진도 찍어주신 데다, 내게 주소와 전화번호를 달라며, 선물을 보내주신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여성은 성룡에게 선물 받은 자서전 사진도 함께 업로드했다. 그런데 성룡 미담으로 끝날 것 같던 이 글은 뜻밖에도 논란을 야기했다. 성룡이 이 여성에게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요구했다는 것 때문. 성룡은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고 과거 내연녀와 혼외자녀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어 그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시선이 뒤따랐다. 댓글창에는 실제로 성룡의 저의가 따로 있다는 의미의 댓글들이 다수 달렸다. 한 네티즌은 "70대에 가까운 나이의 노인이 잘 알지도 못하는 미모의 젊은 여성에게 전화번호와 주소를 요구하는 게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 승무원은 해당 글을 삭제했다. 사실 이미 1980년대부터 홍콩의 대중들은 성룡의 난잡한 사생활을 [[카더라]]로 상당히 알고 있었다. 다만 [[삼합회]]에서 두목급 대접을 받는 배우 [[왕우]]가 성룡의 뒤를 봐주기도 했고 각종 [[루머]]를 퍼뜨리기로 유명한 홍콩 언론도 자국에서 가장 유명한 톱스타를 흠집 내는 것은 꺼렸기 때문에 처음에는 성룡의 사생활을 그다지 캐내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부터 성룡이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활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다른 나라에서도 그에 대한 이런저런 가십성 소문이 많이 퍼지게 되고 1999년 성룡이 오기리와 불륜을 저질러서 사생아까지 생겼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본격적으로 중화권 언론에서 성룡의 난잡한 사생활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했다. 성룡은 중화권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인기가 상당히 많은 연예인이었고, 한국과 일본의 기자들이 홍콩 연예계 사정에 밝을 리도 만무해서, 두 나라의 언론에서는 성룡에 대한 안좋은 보도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카더라]]가 돌아도 해외 배우의 특성상 찌라시 수준으로 여기기 일상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서는 2000년대까지 성룡의 사생활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서 성룡은 대표적인 친한파 중화권 배우 중 한명으로만 기억되었기에 좋은 이미지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