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리학 (문단 편집) === 성리학은 과도하게 비현실적이다 === 재밌는 건, '''[[도가]]와 [[불교]]의 과도한 비현실적인 것이 나라를 망친다'''며 비판하고 나온 것이 성리학이다. 원래 유교는 우주론에 관심없이 [[춘추전국시대]]의 아수라장을 해결하려고 현실에 치중한 윤리학/정치철학이였는데, 도가와 불교가 유교가 속시원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면서 [[위진남북조시대]]와 [[당나라]] (한국의 경우엔 [[고려]])의 학문을 휘어잡았다가, 왕족과 귀족, 학자들이 현실에 관심없이 내세에 치우치다가 나라 정치를 말아먹는 꼴을 지켜본 [[사대부]] 계층이 불교와 도가의 문제의식만을 수용해 현실에 도움이 되게 써먹으려고 유학적인 답을 내놓은 것이 [[성리학]]이다. 그런데 [[조선]]은 이황과 이이의 이론적 전성기 직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성리학을 제외한 공학과 같은 실용학문도 연구자가 죽거나 일본에 납치되거나 하면서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 너무 처참했는지 한국 성리학이 현실을 똑바로 못보기 시작하며 과도한 이론성만 남아 조선의 학문에 남은채로 현실과 점점 괴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 당파싸움을 거치며 유학의 교조화가 일어나다보니 결국 유학이 비판하던 불교의 모습과 다를 게 없어진 것이다. 즉, 단순히 성리학의 본성 때문이라고 하기엔 성리학이 망가진 데는 조선의 난리통이 영향이 컸다고 볼수도 있다. 물론, 성리학이 처음부터 형이상학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 중국은 반대로 [[명나라]] 대에 [[양명학]]이 등장하며, 성리학은 '세상을 극한까지 탐구해 이치를 얻어내라'고 한다면 양명학은 격물치지를 '마음만 이해하고 실행하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명학도 마음에 대해 이해한 내용이 엿장수 맘대로였단 점에서 단순히 무엇이 더 형이상학적이라 주장하긴 어렵다. [[청나라]] 대에는 [[고증덕후]]스럽게도 [[문자의 옥]]을 거치며 성리든 양명이든 황제의 심기를 건들것 같아서 '유교 경전이 [[고증]]부터 틀린거 아니냐?'라는 [[고증학]]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결국 성리학이나 양명학 학자들의 연구를 [[건륭제]]가 [[문자의 옥]]으로 탄압해서 '''심기를 건들만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학문으로 도망친 도피성 학문이라는 점에서 고증학 역시 비현실적 학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물론, 고증학 연구로 '''진짜 고증이 틀린 부분'''들을 실제로 찾아냈고, 그러면서 [[공자]]처럼 현실로 돌아가자는 흐름이 생겼다는 점에서, 공자 때의 유학처럼 다시 현실로 집중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