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리학 (문단 편집) ==== 반론 ==== 흔히 성리학(주자학)에서 과도하게 형식에 집착한다고 비난받는 부분은 사실 성리학 체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주자가 살아있던 당시의 관혼상제의 문제였다. 송대의 가례(家禮)가 과도하게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현실적인 예법을 보급하려는 것이 주자가 편찬한 주자가례의 의도였다. 하지만 이 주자가례도 현실적으로 모두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주자 본인조차도 이 가례는 원리원칙일 뿐이니까 상황에 맞게 응용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특히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들이 주자의 당대 상황과 관계없이 성리학을 절대화, 종교화시키는 바람에 학문의 취지를 훼손시켜버린 것이다. 예송 사건에서 성리학을 상대해석 하려는 [[윤휴]]와 [[박세당]]을 사문난적으로 몰아낸 [[송시열]]과 그 추종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