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심여자대학교 (문단 편집) == 여러 정보 == 성심학교의 '''초기 학풍은 그야말로 소수정예에 [[귀족]] 학교'''였으며, 이 학풍에 동감한 여러 고위층들이 성심학교에 딸을 입학시켰다. 1974년 [[부천]] 분교가 생기기 이전의 성심여대는, 소규모 학생들만을 모집하여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였다. 성심학교가 대규모로 커져 귀족적 학풍이 조금씩 옅어지던 와중에도 많은 고위층 딸들이 다녔으며, [[고명딸]]이 성심여대 출신인 [[정주영]] 회장은 1980년 [[부천]] 분교에 [[도서관]]을 무상으로 지어 기증하였다. 현재 이 건물은 비루투스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강의동으로 쓰인다.[* 그래서 건물이 낡아 햇빛이 새어도 못 부순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선지 몰라도 성심여대 졸업생이 대부분인 [[가톨릭대학교]] 성심 동문회는 정말 자존심 높은 인간들이 있었다. 1995년 통합 당시는 '''"귀족적인 성심여대와 가톨릭대학교를 통합할 수 없으며, 남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라거나 '''"1995년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에 입학한 학생들부터는 우리 동문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막말을 해대 [[어그로]]를 끌었다. 현재는 학교에서 성심 동문회에 대해 잘 대우를 해주고, --동문회 운영자금이 궁해지자 동문회비를 끌어들이기 위해-- 성심 동문회는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시험기간이 되면 간식을 주는 등의 여러가지 행사를 하고 있다. 성심동문회는 현재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내에서 수익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니콜스관 4층에 있는 까페씨유가 그것이다. 다솔관, 니콜스관, 마리아관, 비루투스관에서 수업을 듣다가 어디서든 10분 내에 까페씨유에 도달하여 [[커피]]를 마실 수 있기에 사람들이 들끓는다. 하지만 일단 교내 다른 카페에 비해 맛이 없고, [[커피]]를 미리 추출하여 [[냉장고]]에 보관한다거나 좋지 않은 재료를 쓴다거나, 서비스가 정말 좋지 않다거나 하여 말이 많다. 동문회에 찍힌 단체에는 세미나실도 빌려주지 않았다가, 학보사에서 이점을 밝혀서 고쳐졌다. 동문회의 정을 생각해서 이곳을 이용해 줄 것을 동문회에서 홍보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아는 학생들은 절대로 이 [[카페]]에 가지 않는다. 결국 2014년 경에 동문회는 카페에서 손을 뗐고, 카페씨유는 가톨릭 바리스타협회에서 운영하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1960년대 후반부터 [[성심수녀회]]에서는 수도권 지역에 성심여대를 유치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의 터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 중에 후보지로 올랐던 곳이 바로 [[부천시]] 역곡과 현재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근처였다. 하지만 당시 테헤란로는 논밭만 있고 [[소]]가 농사를 지었던 깡촌이었기 때문에, 수녀님들은 토론을 거쳐 [[부천시]] 역곡에 새 학교 부지를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테헤란로에 학교 부지를 정했더라면 아마 성심여대는 [[한국]] 최고의 [[여자대학교]]가 되었을지도!![* [[국민대학교]]도 [[강남구]] 대치동에 학교부지를 마련했으나 똑같은 이유로 지금의 정릉에 캠퍼스를 만들었으며, [[단국대학교]] 또한 [[서초구]] 내곡동에 학교부지를 마련했으나 같은 이유로 학교 이전을 미루다가 결국 이전을 못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또한 [[강남구]] 자곡동에 학교부지를 마련해 추후 이문동에서 옮길 예정이었지만 해당 부지가 그린벨트로 묶여있고, 돈이 없어 옮기지 못하다가 강남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되는 바람에 정부에 대부분 수용되고 말았다. 해당 부지에 대한 설명은 해당 대학교 항목 참조.][* 반대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똑같이 깡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거기다 교회를 짓자고 목사 이하 신자들이 깡촌이거나 말거나 그냥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며 박박 우겼고 결국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 이후 거기에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63빌딩]], [[KBS]], [[MBC]] 등 쟁쟁한 건물들이 마구 들어서기 시작하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의 대박이 터져버렸다.] 그러나 반대로 당시 가톨릭대 의대(명동성모병원)는 [[명동]] 생활을 정리하고 확장 이전을 위해 여의도로 이사했고, 그곳이 지금의 [[여의도성모병원]]이다. 이후 1980년대에 여의도 부지도 좁아지자 반포 개발 직전에 서초구 반포동에 거대한 땅을 샀는데, 그곳이 현재의 [[가톨릭대학교/성의교정]]과 [[서울성모병원]]이 위치한 곳이다. 그 덕에 현재 서울성모병원은 빅5[* [[서울대학교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중에 교통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같은 학교(당시에는 다른 학교였지만)의 역사임에도 운명이 장난을 치는 수준. --통합할 줄 알았으면 역삼동 부지를 샀을텐데-- 1980년대에 학생 시위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성심여대에서도 학생시위가 일어났는데, 현재의 니콜스관 앞에서 총학생회가 [[단식]] 농성을 했다고 한다. 낮에는 학생들의 주장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고 교섭에 응할 수도 없다고 나오던 수녀님들은, 밤이 되면 '''"여자는 단식을 하면 몸이 상한다"'''며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와서 진심으로 학생들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총학생회는 그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시대가 시대이기에 낮에는 단식 농성과 매정한 학교로 만나 싸웠지만, 밤에는 여학생들과 수녀들로 만나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기에 바빴다고. 문학가 [[피천득]]이 성심여대에 한 학기 출강하기도 했다. 자세한 사연은 그의 [[수필]]인 [[인연(수필)|인연]] 항목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