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게드 (문단 편집) == 역사 == 세게드에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파르티스쿰(Partiscum)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었다. [[훈족]]의 [[아틸라]]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세게드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헝가리 왕국]] 건국 이후인 1183년 무렵이었다. 이후 [[몽골 제국]]의 침공과 [[오스만 제국]] [[오스만 헝가리|지배]]를 거쳐 [[합스부르크 가문]]의 [[합스부르크 제국|지배]]를 받게 되었다. 세게드는 [[1848년 혁명]]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에 맞선 헝가리 혁명군 최후의 거점중 하나이기도 했다. 1878년에는 [[티서강]]에 대홍수가 일어나서 도시가 수해를 입었다. 기존 건물 5,723채 중에서 265채만이 남게되었고 이재민이 대량으로 발생했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카이저|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세게드에 수재민 위문을 위해 방문하며 세게드를 이전보다도 더 아름답게 짓겠노라고 선언했다. 오늘날 세게드 시가지 대부분은 이때를 전후하여 19세기 말에 조성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헝가리에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자, [[호르티 미클로시|호르티]] 제독이 이끄는 반혁명군이 세게드를 중심으로 봉기하였다. 호르티 제독은 [[루마니아 왕국]]의 간섭군과 함께 공산정권을 타도하고 [[헝가리 왕국(1920~1946)|왕국을 복원]]하였다. ~~혁명의 보루에서 반혁명의 보루로~~ 이후 1920년 [[트리아농 조약]]이 체결되어 헝가리 남부의 [[보이보디나]]와 [[트란실바니아#s-3.2|바나트]]가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 왕국]]에 넘어감에따라 세게드는 졸지에 [[국경도시]]가 되어버렸다. 이 시기에 루마니아에 넘어간 콜로주바르(Kolozsvár, 현 [[클루지나포카]]·Cluj-Napoca)의 프란츠 요제프 대학교가 세게드로 넘어와 세게드 대학교로 재창설되었다. 2차 대전을 거쳐 공산주의 시절에 세게드는 헝가리 남부의 중심도시로써 식품가공업과 경공업이 발달하여 오늘날까지도 세게드의 주요산업으로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