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도정치 (문단 편집) === [[철종(조선)|철종]] 시대(1849년 ~ 1863년) === 헌종 사후, 권력욕에 혈안이 된 신 안동 김씨가 약간의 무리수를 두어 철종을 옹립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철종의 혈통상 그의 옹립을 무리수라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워낙 왕실 후손이 귀해지는 바람에 당시 가장 가까운 혈통이 철종밖에 없었다. [[효종(조선)|효종]] 이후 몇 대에 걸쳐 사실상 독자로 대를 잇는 과정에서 그나마 [[사도세자]]가 숨통을 틔워주지만, 그 아들들도 걸핏하면 역모에 연루되어 죽었다. 결국 남아있는 혈통이라고는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손자밖에 없었다. 철종 즉위가 무리수라고 보는 의견 중에는 '강화도령'으로 농사나 짓던 무지렁이를 왕위에 올렸다고 보는 경우도 있는데, 철종은 [[강화도]]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도 않았으며, 어지간한 종친들이 읽는 경서 정도는 읽고 있었다. 다만 [[철인왕후|철종의 비]]를 또 신 안동 김씨로 맞아들인 건 분명히 무리수였고, 심지어 [[순원왕후]] 김씨까지 반대할 정도였다. 신 안동 김씨의 세도는 여하간 절정에 올라, 각지의 수령과 주요 관직을 모두 신 안동 김씨가 독차지하게 된다. 더 이상의 다른 가문들에 대한 고려도 필요없었던 것이다. 철종의 치세에 이르면 지구적인 기후 변화로 가뭄과 홍수, 기근이 조선에서도 발생했는데, 조선은 허약해진 재정과 심부전에 빠진 행정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행정의 부패와 민중에 대한 수탈이 극심해졌다. 그래서 철종이 죽는 해에 [[임술농민봉기]]라 불리는 전국적으로 민란이 일어난다. 동학이 창시된 시기도 바로 이 때다. 조선만의 일은 아니어서 [[청나라]]와 [[도쿠가와 막부]]에서도 같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청나라는 이때 [[아편전쟁]]으로 문까지 따였다. 일본도 [[쿠로후네 사건]]으로 마찬가지였다. 철종이 자식들의 요절로 후손없이 죽자 왕통은 다시 한번 끊겼고, [[풍양 조씨]]의 조 대비에 의해 [[정조(조선)|정조]]의 동생 은신군의 양자의 손자가 되는 방계 쪽 인물인 [[고종(대한제국)|고종]]을 [[효명세자]]의 양자로 삼아 왕으로 삼게 된다. 혈통적으로는 효종의 동생 [[인평대군]]의 후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