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도정치 (문단 편집) === 세도 가문들이 똑똑한 왕족들을 마구 죽였다? === 권력에 눈이 먼 세도 가문들이 왕손들에게 닥치는 대로 역모 혐의를 뒤집어씌어 마구 죽였다는 말들이 많이 퍼져 있고 나무위키에도 그런 식으로 설명된 적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세도 가문 집권 기간 동안 해를 입은 왕손이라 해봐야 두 셋에 지나지 않는다. [[이인응|경평군 이호(이세보)]]와 [[경원군(1842)|경원군]] 이하전, [[은언군]]의 서손자이자 [[전계군]]의 아들인 [[회평군]] 이원경인데 이 중 이원경, 이하전은 모두 역모에 휘말려 죽은 것이라 본인들은 억울해도 세도가문의 음모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왕족이 역모 세력으로부터 이름을 언급당하면 바로 처형당하는 것은 건국 초부터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하전은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왕위 서열에서 안드로메다급으로 까마득하고 경평군은 아예 죽지도 않고 유배됐다. 그것도 작호만 박탈하자는 왕의 주장을 신 안동 김씨가 무시하고! 사실 경원군은 죽을 죄를 저지른 건 아닌데 저지른 죄라 봐야 신 안동 김씨의 세도가 마음에 안들어서 "이게 이씨의 나라냐 아니면 김씨의 나라냐?" 라고 한 거 그게 전부였다(...) 우선 이쯤 돼서 조선 왕실의 왕위 서열 1순위들은 소위 '''삼종의 혈맥'''이라 불리는 효종 - 현종 - 숙종조로 이어지는 라인의 후손들이었다. 이 라인의 계승자였던 [[사도세자]]의 아들들로 정조,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이 있었다. 이 중에 '''은신군'''은 영조 47년, 경주 김씨의 김귀주가 풍산 홍씨의 홍봉한을 탄핵하는 과정에서 '추종을 외람되이 거느리고 방자하게 굴었다'는 이유로 은언군과 함께 유배를 갔다가 일찍 죽었고[* 이 와중에 홍봉한, 김시묵 등 탕평파들이 대거 삭출되었으나 이내 복귀했다.] '''은전군'''은 정조 시기에 홍계능의 역모에 휘말려 죽었으며, 은언군 역시 유배되어 있었다. '''은언군'''의 경우, 그의 아들 상계군이 완풍군으로 호를 고치고 정조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일찍 죽었고[* 홍국영의 야망에 너무 노골적으로 개입되어 있었던 처지라 스스로도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했고, 이에 아비 은언군이 자신이 죽을까봐 미리 선수를 쳐서 독살해버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아들을 잃은 은언군은 정조의 표현에 따르면 '사람의 형상만 겨우 갖추어' 유배된 처지였다. 그러다가 '문양해의 옥사'가 터지자 은언군을 죽이라는 청이 들어왔는데 정조는 끝까지 지켜냈으나 정조 사후 벽파가 집권하면서 홍봉한의 아들 홍낙임과 함께 사사되었다. 은언군에게는 상계군과 풍계군, 두 아들이 있었는데 상계군은 앞서 언급했듯이 정조 10년에 갑작스레 죽었고, 풍계군은 은전군의 양자가 되었다가 후사없이 죽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서자 전계군 이광뿐이었다. 살아생전엔 봉군되지 않았고 그의 3남 철종이 왕이 되면서 봉군되었다. 이광은 아비가 사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운 좋게 살아남았고, 순조의 비호로 결혼도 했다. 그의 아들론 이원경, 이경응, 이원범이 있었는에 이중 이원경은 '민진용 역모 사건' 때 죽었고, 헌종이 승하할 때 돼서는 '3종의 혈맥'의 후손이라곤 [[이경응]], [[이원범]] 두 사람밖에 없었다. 실제로는 한 명 더 있었다. [[익평군 이희]]로 풍계군의 친자이자 상계군의 양자였다. 단, 이희는 양아버지 상계군의 역모와 관련이 있었고, 풍계군 또한 은언군의 친자이나 역시 반역죄로 처형된 은전군의 양자로 갔기에 문제가 있었다. 또 애초에 상계군의 양자가 된 게 은언군가의 봉사손으로 대를 잇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리보나 저리보나 절대 왕이 될 수 없었다. 이 중에서 세도 가문들이 똑똑한 왕족은 곤란하다고 마구 모함해서 죽인 흔적은 없다. 피로 이어진 왕족 자체가 거의 없는데 흔적이 있을 리가... 애초에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조선 왕실은 자손이 귀해진다. 이런 마당에 마구 죽일 수가 없었다. 왕족들이란 예부터 [[역모]]에 거론되면 억울하게 죽어야 할 처지였고[* 왕의 비호로 목숨을 건지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그건 극히 운빨이 따라줘야 가능했다.] 이원경의 경우만 해도 민진용에 의해 추대되려 했다는 이유로 죽었지, 모함을 당해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와 연계해서 철종도 무리수를 둬서 옹립했다고들 하지만 그럼 누굴 추대한단 말인가? 예외라 해봐야 그의 형인 이경응밖에 없지만 형이 아니라 동생을 세웠다는 것을 트집잡을 건덕지는 없다. 어차피 철종의 승계로 생기는 문제는 이경응이 승계해도 마찬가지였다. 이경응이 왕위 승계에서 탈락한 이유는 병이 있었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첩의 아들이었으며, 큰 형 이원경이 죽은 뒤라 이광의 집안을 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철종의 어머니는 이광의 정실이 죽고 다시 맞아들인 계실이었으며 영의정으로 추증된 염성화의 딸이었다. 그래봤자 파주 출신 외가는 몰락한지 오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