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이브더칠드런 (문단 편집) == 역사 == >'''오늘 우리가 도운 사람이, 내일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We can be sure that those whom we help today will help us tomorrow.[* 이 말을 실현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6.25 전쟁]]과 전후 복구 과정에서 한국은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여러 국가들의 도움을 받는 국가였지만 수십 년만에 오히려 다른 나라를 돕는 후원국이 되어 6.25 전쟁 당시 한국을 도왔던 [[에티오피아]], 전후 한국을 원조한 [[아이티]]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의역하면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 정도가 될 수 있는데 이는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사용하는 말이다.] >---- >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의 모토 1919년 당시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기근]]에 빠져서 상황이 더 심각했다. 거기서 아이들이 겪은 참상을 본 에글렌타인 젭은 구호기금을 모아서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초창기 반응이 그리 좋지가 않았다. '적국의 아이들을 위해 돈을 모으려 하는 배신자'라는 비난과 함께 사람들이 몰려오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창립대회는 성공적이었고, 그에게 적대적이던 사람들로부터도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잔뜩 굶어 [[영양실조]]에 걸린 6살 여아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를 광장에서 배포했다가 전시 국토방위법에 걸려 체포도 당했다. 하지만 [[판사]]는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여 벌금으로 5파운드만을 선고했다. 그녀를 기소했던 검사도 그 뜻에 동참하는 의미로 5파운드를 기부했다.[* 사실 이런 미담도 판사의 권한이 강력하여 성문화된 법문보다 판사의 판단을 중시하는 영미법계의 영국이라 가능한 얘기라는 한계가 있다. 대륙법계인 한국에선 판사보다 법문이 중요해 판사가 이렇게 판결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1년 뒤에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국제 세이브더칠드런 펀드 연합(Save the Children Fund International Union)을 출범했고 나중에 그리스-터키 전쟁과 러시아 대기근 때 모금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1923년에 에글렌타인 젭은 아동권리선언문을 작성했고 이는 나중에 [[UN 아동권리협약]]의 기반이 되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창립 당시부터 아동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지금도 아동권리를 기반으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진다. 1977년에는 국제 세이브더칠드런 연맹(Save the Children Alliance)을 설립하며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세우고 1997년에 [[영국]] [[런던]]으로 옮겨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