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셀축 (문단 편집) === 주요 유적지 === * [[성모 마리아]]의 집 Ana Meryem Evi. [[성모승천|성모 마리아가 승천]]하기 전에 살았다고 하는 집이다. [[요한 복음서]] 19장의 내용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숨을 거두기 직전에 제일 사랑했던 제자, 즉 [[사도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였으므로 그날부터 요한은 성모 마리아를 모셨다고 한다. 성경 외의 다른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말년을 에페소스에서 보냈으므로 성모 마리아도 역시 에페소스에 살았으리란 추측이다. 사실 성모 마리아가 승천 직전에 살았다고 주장하는 곳은 중동지역에서 이곳까지 3군데가 있다. 다른 장소들도 있는데 굳이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평생 [[독일]]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아나 카타리나 에머리크(Anna Katharina Emmerick, 1774-1824)[* [[한국어]] 위키페디아에는 '안나 카타리나 엠머릭'이라고 항목이 있지만, 여기서는 [[독일어]] 표기법을 따랐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녀였는데 환시자로서 생전에 유명했다. 200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복자|복녀]]로 시복했다.]라는 수녀 때문이다. 에머리크 수녀가 꿈 속에서 [[성모 마리아]]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책을 [[프랑스인]] [[신부(성직자)|신부]] 줄리앙 구예(Julien Gouyet)가 읽고는 자신이 직접 에페소스로 찾아가 환시를 확인해보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1881년 에페소스에 가서 책이 묘사한 내용을 따라가 보니, 지역민들에게 튀르키예어로 파나야 카풀루(Panaya Kapulu), 즉 '동정녀의 문간'이라고 불리는 폐허가 된 옛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건물의 모습 또한 에머리크 수녀의 환시와 일치했다고.... 참고로 발견 당시에도 현지의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 매년 [[8월 15일]]([[성모승천대축일]])마다 와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구예 신부의 발견은 별 호응이 없었다. 이후 마리 드 망다그랑세(Marie de Mandat-Grancey)라는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소속 프랑스 수녀가 선교차 튀르키예로 파견되어 이즈미르(İzmir)시에 있던 프랑스 병원의 장상이 되었는데, 1891년 식사 중에 에머리크 수녀의 책을 읽고는 환시가 묘사한 '성모 마리아의 집'을 찾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 알고 지내던 선교수도회(라자로회/빈첸시오회)[* 라틴어 명칭은 Congregatio Missionis. 이름 때문에 '선교활동을 하는 수도회' 전체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처럼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성 빈첸시오 드 바오로가 세운 수도회의 이름이다.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와는 같은 창설자가 세운 형제 같은 관계.] 소속 프랑스인 선교사제 두 명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두 프랑스인 신부들은 에머리크 수녀의 환시 내용을 따라 에페소스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10년 전 구예 신부와 마찬가지로 '파나야 카풀루'에 이르렀다. 신부들은 파나야 카풀루가 주변 지역민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곳임을 확인하고는 망다그랑세 수녀에게 위치를 알려주었고, 망다그랑세는 1915년에 사망할 때까지 해당 건물과 주변 땅을 사들이고 복원하며 관리하고자 노력하였다. 셀축에서 가장 먼 위치에 있는 관광지로,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할 수 없고 택시를 타거나 렌터카를 끌고 가야 한다. --아니면 히치하이킹이라도.-- 그리스도교 관련 유적이 많은 에페소스 특성상 (특히 겨울철 그날에) 교회에서 온 단체손님들로 북적인다. 그야말로 [[성지순례]]급. 특히, [[바티칸]]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져서이기도 한데, '''바티칸에서는 이곳을 [[성모 마리아]]가 거주했던 곳이라고 공식 인정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역대 교황]] 몇몇이 이곳에 성지라는 칭호를 인정하고 성모공경 차원에서 방문했는데, 이 내용이 잘못 알려진 것.[* 비슷한 예로,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메주고리예 지역 성모발련도 바티칸에서 공식인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성모 공경 차원에서 그곳을 방문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리스 정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를 제외한 나머지 [[동방정교회]]들이나 [[개신교]] 원리주의자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 성지여행 책자에선 시나이산과 같이 자주 언급하는 성지이다. 헌데, '''재미있는 건 정교회나 개신교 신자가 아닌 보통 [[튀르키예인]]들도 와서 이곳에서 소원을 빌고 간다는 점이다.''' [[이슬람교]]에서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어머니로 공경받으므로 [[무슬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인데, 성모 마리아의 집 주변에 자라는 나무들을 보면 [[튀르키예인]]들이 소원을 적어서 묶어놓은 종이조각들이 휘날린다. 성지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미사]]가 있으며, 이곳에서 여러 나라 언어로 진행되는 미사에 참례해봄도 뜻깊은 경험이 될 것이다.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도 기념미사를 봉헌하는데 [[가톨릭]]뿐만 아니라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정교회]] 등에서도 함께한다. 성모 마리아의 집 뒷편에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 있으며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성지를 관리하고 있다. 만약에 이곳을 순례할 계획이 있다면 셀축 시내에 위치한 아베마리아 호텔이나 에페소 평화관상 기도의 집에 연락을 하면 차량을 구하기 쉽다. 아베마리아 호텔은 프란치스코회 수사였다가 [[환속]]한 튀르키예인이 운영하는 호텔이고, 에페소 평화관상 기도의 집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제인 한국인 신부가 피정객을 대상으로 운영한다. * 성 요한 성당 유적 Aziz Yahya Kilisesi 시내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보인다. 성당 터의 중앙 부분에는 제대가 있었던 자리와 세례용 욕조가 있다. [[튀르키예어]]로 "St.Jean'ın mezarı"라고 씐 대리석으로 장식된 판석이 있는데, 그곳이 [[사도 요한]]의 무덤이다. 이 때문에 사도 요한의 축일이 되면 순례객들이 몰린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 건립된 성당이었으나 13세기에 대지진으로 건물이 거의 다 무너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튀르크 국가인 아이든국이 이 지역을 점령해버리는 바람에 복원되지 못했다. 잔해 중 일부는 성 요한의 교회 바로 밑에 세워진 이사베이 모스크(İsabey camii)를 건설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입장료는 2023년 5월 기준으로 100리라이며 뮈제카르트가 있으면 무료로 통과할 수 있다. 셀축에 가장자리쯤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있고, 셀축에서 야경으로 볼 만한 유일한 관광지이나, 여름을 제외하고는 조명을 켤지 끌지는 당국 맘대로라 운빨이 조금 따라줘야 한다. 뒷편에 아야술룩 성(Ayasuluk Kalesi)이 있는데, 셀축 어디에서든 잘 보이는 성채이다. * 잠자는 7인의 동굴 Yedi Uyuyanlar Mağarası [[에페소의 7인의 잠든 자]] 항목 참조 * 켈수스 도서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3px-Celsiuslibrary-DK.jpg]] 에페소스의 켈수스 도서관 건물.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Celsiuslibrary-DK.JPG|위키피디어]] 여담인데, 에페소스의 대표인 위 셀축 도서관은 세트장 마냥 벽에다가 붙여놓은 형태로 되어있다. [[튀르키예 리라]] E7의 2천만 리라, E8의 20리라에도 소개되었다. 그리스 출신으로서 로마 원로원의 의원이 된 켈수스라는 사람이 서기 117년에 기증하여 세워졌다. 하지만 3세기에 지진과 [[고트족]]의 침공으로 파손되었고 결정적으로 10, 11세기에 지진으로 현재처럼 뼈대만 남았다. * 쉬린제 마을 Şirince Köyü 에페소스와 반대방향으로 8 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마을. 원래는 '못생긴 마을'이라고 불리는 상당히 작은 마을이었는데, 어떤 술탄이 이곳을 지나가면서 아름다운데 왜 '못생긴 마을'이냐며 의아해하여 예뻐졌다는 뜻으로 지금 명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의 쉬린제는 그냥 '''수공업 전시장'''. 와인과 잼, 직물과 도자기와 같은 수제품을 특산품으로 길거리에 내놓고 관광객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사프란볼루]]의 마이너 버전이니 사프란볼루를 통해 왔다면 굳이 갈 필요는 없다. 과거에 이 지역에는 [[튀르키예 독립전쟁]] 이전까지 그리스인들이 살았는데, 때문에 마을 곳곳에 그리스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사실 이곳에 현재도 이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 또한 그리스계지만 무슬림이라 (혹은 무슬림으로 위장해) 인구교환에 해당되지 않은 주민들의 후손들이다. * 에페소스 박물관 Efes Müzesi 에페소스에서 발굴한 것을 모아놓은 전시관으로 입장료는 10리라(2017년 2월). 말 그대로 에페소스에서 발굴한 조각이나 유물들을 모아다가 전시하는데, 메인인 에페소스 사적지만 한 감동도 없고, 규모도 별로 크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박물관에 비해 액션요소(?)를 추가하여 약간 더 공을 들인 분위기다. 민속공예전시관이 야외 방향으로 붙어 있는데, 통합요금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이곳에 유명한 [[아르테미스 신상]]이 두 점 전시되어 있는데, 헬레니즘 특유의 인간적인 분위기보다는 고대 근동의 신상을 연상케 할 만큼 크고 웅장하고, 위압적인 포스를 뿜는다. * [[아르테미스 신전]] 터 Artemis Tapınağı || [[파일:external/helloephesus.com/the-temple-of-artemis.jpg|width=35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iniaturk_009.jpg|width=400]] || || 폐허 || 복원모형 ||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곳이나 지금은 다른 건 아무것도 없고 넓은 평탄한 습지에 기둥 딱 하나 서 있는 게 전부다[* 2015년 기준으로는 큰 기둥 1개, 그리고 반쪽짜리 기둥 1개밖에 없다.]. 말 그대로 터. 원본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고 한다. --[[아테나]]보다 위대한 [[아르테미스]]-- 복원모형은 에페소스 박물관에 있다. 역시 [[한국]]에서 순례객들이 많이 찾는 곳답게 신전터에서 도로 건네에 한식당도 있다[* 2023년 기준]. 사장님 말로는 단체 관광객들이 많은 에페소에서 그런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로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신라면]]과 같은 한국 [[라면]]도 맛볼 수 있고, [[김치찌개]]와 [[파전]] 맛이 그래도 일품이니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운 사람들은 방문해봐도 좋을 듯하다. 2023년 9월 기준, 현지 물가가 폭발적으로 올라 김밥 한줄에 15달러, 김치찌개 백반 15달러, 신라면 15달러이다… 에페소 오토가르에서 에페소 시장쪽으로 가는 길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성 [[루카#s-2.1.2]]의 옛 무덤 에페소의 뒷 출입구로 나와서 (나올 때 다시 에페소로 들어갈 수 있는 손 도장을 관리인에게 받을 수 있다) 길건너을 보면 작은 원형 건물의 터가 있고, 철조망 앞에 영어와 한글로 "루가 성인의 묫자리였던 곳"이라는 팻말과 설명이 있다. 한글 게시판은 [[개신교]]에서 돈을 들여서 세운 건지 "누가의 묘"라고 쓰였다. 에페소 구경 후 여기서 택시를 타고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가 다시 셀축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셀축 구경을 하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