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가 (문단 편집) == 개혁파 설 == 사실 흔히들 알려진 것과 달리 소가씨는 오히려 대왕가를 적극 비호한 개혁파였다는 추측이 많다. 백제 일변도의 외교에서 수-당, 신라, 고구려와 직접 교역해 외교관계의 다변화를 꾀하고, [[왕진이]] 등의 도래인을 활용하여 외부 문명을 적극적으로 들여왔으며 대왕가의 직할령인 둔창을 설치하고 확대해, 지방 호족들의 세력을 누르고 대왕권을 강화하는 데 앞장섰다. 거기다 [[소가노 이루카]] 사후 제36대 [[코토쿠 덴노]]가 진행한 [[나니와]] 천도도 이미 소가노 이루카의 대에 계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에는 [[소가노 이루카]]가 '''대악인'''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을사의 변]] 이후 사람들이 제38대 [[덴지 덴노]]와 [[나카토미노 카마타리]]를 싫어했다는 정황이 많다. 제37대 [[고교쿠 덴노|사이메이 덴노]]가 붕어하기 전 주변 사람들이 급사했으며, 그녀가 귀신을 보았는데 그 귀신이 소가노 이루카의 귀신이라고 믿었고, 나카토미노 카마타리도 죽기 전에 집에 벼락이 내리치자 소가노 이루카의 원령이 저질렀다고 믿었다고 한다. 마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떠오르지 않는가? 이는 사람들이 이들의 죽음을 꼴 좋다고 여겼다는 뜻이며, 소가씨를 지지했다는 뜻이 된다. 소가노 이루카가 죽였다는 야마시로 황자도 존재 자체가 조작된 티가 너무 난다는 평가이다. 오히려 [[을사의 변]]과 [[다이카 개신]]으로 인해 기존의 개혁이 좌절되었고, 덴지 덴노 사후 임신(진신)의 난을 거쳐 제40대 [[덴무 덴노]]가 즉위하면서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