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가 (문단 편집) ==== [[백제]]-[[마한]]계 [[도래인]]설 ==== [[파일:2012013044056108.jpg]] 11세기에 편찬된(14세기경에 편찬되었다는 설도 있다.) 역사서인 《[[부상략기]]》에는 제33대 스이코 덴노 시절인 >"[[593년]] 1월 [[아스카사]] 목탑 초석에 사리를 안치하는 행사를 할 때 소가노 우마코를 필두로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백제 옷을 입고 나타나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줬다." 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역시 소가 가문과 백제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백제계인 것은 확실치 않지만 친백제 성향이거나 백제와 깊은 연관이 있었음은 확실해 보인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끊임없이 소가 가문이 [[백제]] 출신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고, 한국 사회에서는 소가 가문이 백제 출신인 것처럼 그려지지만, 일본 사학계에서는 증거가 없다며 무시하고 있다. 한국 역사학자들이 소가 가문의 뿌리가 백제에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 첫째. 5세기 말의 대신인 [[소가노 마치]](蘇我滿知)와 비슷한 시기, 백제의 [[목만치]](木滿致)의 한자가 비슷하다는 점. * 둘째. 소가 가문의 역대 계보를 살펴보면 한자(韓子), 고려(高麗)와 같은 한반도 풍의 이름이 자주 보인다는 것[* 고려하면 보통 한국에서는 [[왕건]]의 [[고려]]만을 생각하는데, 5세기 [[장수왕]] 시기에 고구려도 국명을 [[고려]]로 변경했다.] * 셋째. 소가 가문이 도저히 그 유래를 추적할 수 없다가 5세기에 갑자기 일본 정계에 갑툭튀했는데 또 교묘하게도 [[대성팔족|백제의 8성 귀족]] 중 하나였던 목(木)씨가 비슷한 시기 소리 소문 없이 백제 중앙 정계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점[* = 즉 목씨 가문 전체가 다같이 일본으로 이주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목윤귀]], [[목례마나]]가 6세기에 중•하좌평의 자리에 있으므로 이는 사실이 아니다.]이 그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하는데 [[목만치]]가 일부러 왜국에 가서 나무 '목'과 관련없는 '소가'라는 성씨를 썼다는 점, 백제계라 고려(고구려)와는 빈번한 전투로 반감이 있었을 텐데, 백제계면서 고려라는 이름을 썼다는 점 등이 있다.[* 삼국시대 최후반부의 고구려-백제 vs 신라-당 동맹구도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고구려와 백제는 수백년을 [[근초고왕|서로]] [[고국원왕|왕을]] [[개로왕|죽고]] [[장수왕|죽이는]] 철천지 원수지간이었고, 백제는 중국(북조, 수, 당)과 협력해 고구려를 견제하려는 시도도 많이 했다. 백제가 당나라에 미련을 끊고 갈라서는 것은 멸망 직전 불과 10여 년 정도뿐이었다. 즉 고구려와 백제가 공통된 조상을 섬기고 있다고 해도 마치 현대의 남북한처럼 극도로 사이가 나빴는데 백제계가 고려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것. 그리고 백제 시조 온조가 [[주몽]]의 아들이라는 의식이 있었다지만 백제는 고구려보다는 [[남부여]] 국호와 같이 고구려 이전의 원조 [[부여]]에서 이어지는 정통성을 주로 강조했다.] 또한 '한자'는 소가가 한반도 출신의 여성을 납치해 결혼해서 낳은 혼혈이라는 뜻이라고 《일본서기》에 쓰여있다고 주장한다.[* [[목만치]]는 그 아버지인 [[목라근자]]가 가야를 침공할 당시 그곳에서 취한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곡해]]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목만치가 사실 백제에 파견되어 있던 왜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목씨는 엄연한 역사를 가진 [[대성팔족]]의 명가인데 여기에 파견된 왜인을 넣어줄리 만무하며, 무엇보다 [[목만치]]에겐 [[목라근자]]라는 분명한 생물학적 아버지가 그 출생 과정과 함께 《[[일본서기]]》의 기록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소가노 이루카]]의 별칭으로 제시되는 林大臣, 我入鹿, 鞍作大郎 등을 인용했을 때, 鞍作은 《[[부상략기]]》(扶桑略記)에 의하면 백제계 도래인으로 명시되어 있어, 그의 출자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말이 많다. 언급되었던 林大臣 또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의하면 >左京諸蕃百濟林連百濟國人木貴公之後也 >임씨는 백제국 목씨에서 나온 가문이다. 라고 적혀 있다. 일본 사학계에서는 백제계로 [[나카토미노 카마타리]]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 중이다. 좀 더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상궁성덕법왕제설]]》에 소가씨가 원래 임(林)씨라고 표기한 기록이 있으며, 또 다른 서적인 《[[신찬성씨록]]》의 경우 임(林)씨는 본래 백제 사람 목(木)씨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위의 막연한 근거들 보다는 좀 더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목씨가 전부 건너가서 소가씨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게, 《[[상궁성덕법왕제설]]》의 임씨였다는 점을 미루어 백제권에 속했던 영토에 본관을 둔 임씨들을 조사할 시 종가가 소유한 정자 아래서 마한 유력자의 유물이 출토되는 걸 볼 수 있다. 적어도 이들은 전부 건너가지는 않았으며, 현지에서 목씨만이 아닌 다른 성씨들까지 통합하여 소가씨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