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굉 (문단 편집) === 사치를 일삼던 황족 === > 나의 재주는 너보다 백 배 많지만 이 일을 맡고서는 오히려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너는 무엇 하려는 사람인가? 나는 한(漢) 문제(文帝)처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네가 어리석다고 생각할 뿐이다. >---- > '''『[[자치통감|자치통감(資治通鑑)]]』''' 어느날 소굉의 첩의 동생 오법수(吳法壽)가 사람을 죽이고 소굉의 집에 숨었는데 소굉은 그를 꾸짖지 않고 숨겨주었다. 이를 눈치챈 소연은 소굉에게 오법수를 집에서 내놓게 하였고 후에 엎어서 죽였다. 남사(南司)에서 소굉의 관직을 면직시키라고 상주하니, 소연이 주석을 달아서 말하였다. “소굉을 아끼는 것은 형제로서 사사롭게 친한 것이고, 소굉을 면직시키자는 것은 제왕 된 사람이 법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상주한 것이 옳다.” 후에 소굉은 면직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 문제를 일으켰지만 소연은 그때마다 소굉을 꾸짖기만 하고 사면해주었다. 소굉은 사치스럽고 참람(僭濫)하기가 지나치고 재물을 모으면서 만족할 줄 몰랐다. 창고는 거의 100칸에 이르렀는데 내당의 뒤에 있었으며 문과 자물쇠가 아주 엄하여 어떤 사람이 갑옷과 무기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비밀리에 보고하였다. 소연이 우애(友愛)에 있어서는 아주 두터워서 특별히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다른 날 음식을 잘 차려서 소굉의 애첩인 강씨(江氏)에게 주며 말하였다. “마땅히 너에게 가서 즐겁게 연회를 열 것이다.” 다만 옛날 친구인 사성(射聲)교위 구타경(丘佗卿)을 데리고 가서 소굉과 강씨와 더불어 많이 마시고 반쯤 술에 취한 다음에 말하였다. “내가 지금 걸어서 네 후원에 있는 방에 좀 가 보아야겠다.” 즉시 수레를 불러서 당(堂)의 뒤로 질러가게 하니 소굉은 소연이 그의 뇌물로 받은 재물을 볼까 두려워서 안색이 공포에 질려 두려워하였다. 소연은 속으로 이를 더욱 의심하고 이에 방마다 다 검사하니 전(錢) 백만을 한 무더기씩 쌓아놓고 황색 표지로 이를 표시해 두었으며, 1천만 전을 한 개의 창고로 하여 자색으로 표시해 두었는데, 이와 같은 것이 30여 칸이나 되었다. 소연이 구타경과 더불어 손가락을 굽혀서 헤아려 보니 보인 전(錢)이 3억여 만이었고, 나머지 집에는 포와 견(絹), 사(絲), 면(棉), 칠(漆), 밀(蜜), 저(紵), 랍(蠟) 등 잡화를 쌓아 두었는데, 다만 창고에 가득한 것만 보았지 얼마인지는 몰랐다. 소연은 비로소 무기가 아닌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아육(阿六)아 너의 생계(生計)가 대단하구나.” 마침내 다시 대단히 많이 마시다가 밤이 되었고, 촛불을 들고서 돌아왔다. 형제는 바야흐로 돈독하고 화목하게 되었다. 소굉은 도하에 수십 개의 저택을 가지고 있었는데, 돈을 걸어놓고 문서를 담보하였고, 매번 전지와 저택, 점포를 계약문에 올려놓았으며, 기한이 되어서는 담보를 붙인 주인을 몰아서 그의 집을 빼앗으니, 도하와 동부에 사는 백성들은 직업을 잃은 사람이 하나가 아니었다. 훗날 자치통감의 저자 [[사마광|사마광(司馬光)]]은 이렇게 평했다. > 소굉은 장군이 되어 3군(軍)을 뒤엎어 버렸고, 신하가 되어서는 대역죄에 관련되었는데, 고조로서는 죽일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 옳았습니다. 몇 십일 사이에 다시 삼공으로 삼으니 형제간의 은혜는 실로 두텁지만 제왕(帝王) 된 사람의 법도는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