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그드인 (문단 편집) == 무역 == 주로 [[중앙아시아]] [[트란스옥시아나]] 일대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였으며, 동서남북로 [[중국]]과 [[인도]], [[이란]] 그리고 북방 초원지대와 [[콘스탄티노플]]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역로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소그드인들은 국제 [[경제]]와 [[문화]]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소그드인의 문화와 무역 시스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소그드인 가정에서는 아이가 다섯살이 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는데, 이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가서 장사를 하면서 고국에 있는 [[친척]]들과 [[편지]]로 [[정보]]를 교환하고 [[의사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소그드인은 다른 지역에 가서 장사를 할 때도 상업 공동체를 구성하고 본국과의 연락 체계를 유지했으며, 심지어 [[중국]]에서도 소그드인의 우편망이 기능하고 있었다. [[둔황]] 근처 [[옥문관]] 근처에서 서기 [[313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그드어]]의 [[소그드 문자]]로 쓰여진 편지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편지들은 사업상의 내용 외에도 [[흉노]]에 의해 [[낙양]]이 [[약탈]]된 [[영가의 난]] 소식을 비롯하여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혼란한 사건과 교역에 관한 이야기들이 쓰여있었다. 모든 편지들은 [[규격화]]된 형태로 [[주소]]가 적혀 있고 포장되어 있었는데, 이는 [[사마르칸트]], [[호탄]], [[누란]], [[둔황]] 및 다른 지역에 있는 소그드인들이 기존의 [[우편]] 체계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나타낸다. 당시 편지들을 보면 소그드인들의 평균적인 [[산수]] 실력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뛰어났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서신에는 [[이자]]와 예치금을 비롯해서 [[소포]]의 [[무게]] 및 상품의 분할 관련한 내용이 많았다. 소그드인 무역 상인들은 단순히 물건만 들고 나른 것이 아니라 [[선하증권]]과 신용장을 읽고 썼으며 [[곱셈]]과 [[나눗셈]]에 능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계약]]을 성사시키고 집행하는 법,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법, [[환전]]하는 법,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이루어지는 복잡한 금융거래를 집행하는 방법을 이해해야만 했다. [[고대]] 소그드인들의 체계적인 무역과 [[금융]] 시스템은 [[중세]]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의 금융업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이처럼 정교한 수준의 [[수학]]이 보편화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중앙아시아 [[대상]]들의 사회는 조그마한 강점이나 사소한 실수가 곧 손익을 결정하던 경쟁 세계였기 때문이다. 소그드인이 진출한 지역은 [[동아시아]] 외에도 [[동로마 제국]]을 포함한 [[유럽]]이 있었다. 트란스옥시아나의 소그드인들은 [[에프탈]]과 [[서돌궐]] 제국에게 안정적인 수입만 제공해 준 것뿐만이 아니라 [[도시]]에서 생산되는 여러 공산품을 직접 공급하고 [[외교관]]으로 봉사하는 등 이들 유목민들이 단순한 전사집단에서 국가로 성장하는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 소그드인은 태어날 때부터 [[아교]]를 바른다는 중국 [[속담]]이 있었을 정도로 장사에 수완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새로 태어난 [[아기]]의 [[손]]에 부모가 아교를 바르고 [[금화]]를 쥐어주었다. 손에 들어온 [[돈]]을 아교 바른 것처럼 절대로 놓치지 말라는 의미에서였다. 또 [[입]]에는 [[꿀]]을 발라 주었는데 이것은 장사할 때 꿀처럼 달콤한 화술로 거래 상대를 뼛 속까지 휘어잡으라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서돌궐]]이 소그디아나를 정복한 뒤에도 [[이란]] [[사산 왕조]]나 [[동로마 제국]]으로 보내는 [[사신]]으로 소그드인을 보냈다. [[당나라]]가 현 신강 지역에 튀르크 유목민들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안서도호부]]를 [[위구르]]가 점령할 때 지원하였다. [[중동]]의 소그드인들은 정치적으로도 [[우마이야 왕조]]에 맞서 [[호라산]]의 [[압바스]] 세력을 후원시켜 [[아바스 왕조]] 성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추정되는데 이는 최근에 제기되고 연구되는 가설로 아직 정설은 아니다. [[당나라]]에 체류하던 소그드인들이 [[안록산의 난]]을 지원했다 실패한 것과 대조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