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드마스터 (문단 편집) == 현실의 소드마스터 == 소드마스터라는 칭호는 판타지 소설의 클리셰 취급으로 도검제일주의나 양판소들 때문에 까이는 경향이 크긴 하지만, 달인이라는 의미의 소드마스터라는 칭호는 '''[[서양 검술]]에 실제로 칭호가 내려진 적이 있는 진짜배기 칭호다.''' *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검술 길드인 성 마르쿠스 형제단(Marxbrüder)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로부터 "장검의 달인(Meister des langen Schwerts)", 영어로 하면 'Master of Longsword'라는 칭호를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받았다. 독점이라 말해 이해가 힘들 수도 있겠지만 쉽게 말하면 마르쿠스 형제단에서 인정한 장검 사용자는 상술한 '''신성 로마 제국이 공인한''' 칭호를 마르쿠스 형제단에서 받을 수 있었다. * 16세기 영국에는 헨리 8세에 의해 공인받은 검술가 단체 'Company of Maisters of the Science of Defence(방어의 지식 마스터회)[* 이 시대에는 아직 Science가 현대와 같은 과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진 않았다. 라틴어 scientia에서 유래한 '지식'이라는 단어로 옮기는 게 적절하다.]'가 존재했었는데, 검술 길드와 비슷하게 소속된 구성원의 실력을 시험해 등급 분류를 하고, 검술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외국계 검술가가 영국 내에 난립하면서 무술적/문화적 침공을 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하지만 헨리 8세에 의한 독점권과 인증을 받기는 했으되, 컴패니 오브 마스터는 국가 공인 길드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 또한 17세기,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반독점법으로 컴패니 오브 마스터의 독점권한을 빼앗음에 따라 그 영향력을 잃고 서서히 사라져 간다.] 제일 하급은 스콜라, 스콜라로 7년 이상 수련하면 그 윗 등급인 프리 스콜라로, 프리 스콜라에서 7년 이상 수련하면 프로보스트가 된다. 프로보스트 등급에서부터 제자를 받고 가르칠 수는 있으나 아직 독립할 정도는 아니었고, 프로보스트에서 까다로운 검증을 통해 입증받은 인물만이 비로소 마이스터가 되어 독립할 수 있었다. * 프랑스 역시 1567년 프랑스왕 샤를 9세가 세운 'Académie des Maistres en faits d’armes de l’Académie du Roy', 즉 '왕립 아카데미의 무예의 달인 아카데미'~~왠지 아카데미가 두번 들어간다?~~줄여서 '프랑스 검술 학파'(사실상 길드)는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파리를 대표하는 프랑스 검술 스승의 단체로 명성을 날렸는데, 검술 교실의 독점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루이 14세는 학파의 상급 마스터 중 6인에게 귀족 직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귀족 직위를 받은 마스터가 마스터 자리를 내놓거나 별세하면 길드 소속 다른 마스터에게 귀족 직위가 전해지는 형식이었다. 검의 시대가 저물었어도 결투를 위한 검술을 배워야 했던 프랑스 귀족들은, 평민이나 하층민 계급에게 검을 배우는 것이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이라고 여겼기에 자신들의 검술 마스터를 상류층으로 대접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격을 높였다. 루이 14세가 귀족 직위를 마스터에게 부여한 것은 아예 명문화된 케이스다. * 스페인 왕은 15세기부터 수석 마스터 심사관(maestro mayor y examinador)이라는 직위를 가진 마스터를 임명해서 왕국 내의 모든 검술 마스터들의 자격 검증을 감독토록 하였다. * 다르디 검술 학파(또는 볼로냐 검술)를 위시한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검술 유파에서도 엄격한 사승 관계를 통해 검술을 전수했으며, 스승 된 자격이 있는 검증된 검술의 달인을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다. 물론 르네상스 이탈리아 검술이 워낙 폭발적으로 유행하다 보니 '자칭 마스터'가 흔히 나오긴 했지만, 볼로냐 검술 같은 유명한 유파는 유럽 전역의 마스터들과 마찬가지로 각 도시, 혹은 왕으로부터 검술 교실을 세우기 위한 라이센스를 받아 실력을 검증받은 마스터들이었다. 이러한 전통이 유럽 전체에 쭉 물려내려와 대부분의 유럽 주류 국가에서 검술 스승/검의 달인을 마스터라고 칭했다. 보다시피 검술 스승은 왕가나 귀족과 관련되는 일이 흔했고(직접 가르치거나, 혹은 후원을 받거나) 또한 마스터라고 공인받아야만 사업권(검술 교실 개설권)을 얻을 수 있으므로 검술의 마스터라는 단어는 엄격한 실력 검증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명예로운 칭호였다. 길드, 검술 학파, 형제단이나 신성 로마 제국 등 생소한 용어가 사용 되어 판타지적 심상을 키울 수도 있지만, 이는 현대의 [[대한검도회]]나 [[대한태권도협회]]와 같이 현대 무술 단체들과 마찬가지의 형대다.[* 현대에도 대학에 태권도학과 등이 개강하고, 어떤 무술은 나라에 공인을 받으며, 라이센스를 받은 사람만이 그 무술의 도장을 열고 가르칠 수 있다. 단증이(즉, 라이센스가) 없는데 사범(마스터)를 자칭하면 마찬가지로 불법이다.] 즉 칼 한 번에 일타삼피는 기본으로 행하는 현재 흔한 양판소의 검성관 달리 실제 중세 유럽의 소드마스터는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적은 2~3명 정도였다. [[중세 검술]]의 시조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마라, 넷에서 여섯 명의 적에게 대항하지 마라, 자만심을 억눌러라, 동수의 적과 싸우는 자는 용감한 것이지만 4~6명의 적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소드마스터는 만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초인이 아닌 그저 잘 싸우는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2~3명이라고 한 대상은 당연히 동네 불량배가 아니라 '''무기를 든 잘 훈련된 검객/기사나, 실력자들'''을 칭하는 것이다. 즉 자기보다 아래라면 정예 훈련을 받은 기사라 하더라도 2~3명 정도는 혼자서 상대한다는 뜻이다.[* 만화나 애니에서나 수십명의 적을 쓸어버리는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현실은 그런 거 없고 그냥 하나라도 더 많은 게 장땡이다. '''다구리가 최고의 필살기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양날검이었을 서양의 소드에 숙련된 검사들을 상대로 2~3대 1이 가능했다는 말은 차원이 다른 괴물이었다는 소리다. 잘 감이 오지 않는다면 한국사 최고의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척준경]]도 기록상 뒤에 병사 한 명 없이 완전한 1대 다수 상황에서 한 번에 '''죽인''' 최대 적은 추정 3~4명이었다.][* 물론 서양의 소드 마스터는 어느 정도 주기로 계속 배출되는 공무원 같은 개념이고 척준경은 한 나라의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전설적인 무장이기에 직접 비교하기는 애매하다.] 소드마스터라서 검만 잘 다룰 것 같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검술 유파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일반적인 단병접전, 명예를 지키기 위한 1대 1의 [[결투]] 검술, 법정에서의 재판 결투, 암살자의 암습에 대처하는 맨손/단검/급조 무기 무술, 민간 개인 호신 검술과 군용 검술 양자에 두루 쓰이는 [[한손검]]과 양손검, [[방패]], [[창(무기)|창]], [[도끼]]([[폴암]]), [[쿼터스태프]], [[레이피어]], [[단검]], [[갑주]]를 입고 싸우는 갑주 전투술, 기마 무술, 집단전투 등등 다양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었고, 그래서 실제로는 검 이외의 각종 병장기나 싸움방식에도 능숙해야 했다. 다만 롱소드의 달인 같은 식으로 검술이 대표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검술]] 시스템이 다른 무기를 포괄하기 좋은 무기술의 근본이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도 마찬가지. 항상 옆에 칼이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기 소드마스터는 사실상 검이 주전공인 웨펀 마스터라 칭해도 무방한 수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