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경제 (문단 편집) === 정보산업 낙후 === 소련은 1970년대와 80년대 당시 서방에서 훗날 '''컴퓨터'''와 '''로봇'''으로 이어질 자동기계와 정보산업에 투자하는 동안 산업 자동화나 정보산업같은 전자 산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 결과 산업화 시절 지어진 인력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하는 비효율이 이어져 1980년대 초에는 잉여직이 약 3,200만 명 정도 남게 되었다. 소련에서 PC컴퓨터가 처음 출시된 것은 엘렉트로니카 BK가 나온 1984년이였지만 가정용 컴퓨터가 활성화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IBM, HP와 기술교류가 활발해진 1989년 이후였다. 사실 저축률이 높아서 은행에 도는 자금은 많았기 때문에 제대로 활용했다면 재빠른 인프라의 구축도 가능했지만 이렇게 구축이 늦었던데에는 관료들의 첨단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던데다가 비용문제를 제기했던 당대의 전문가들이나 산하기관들의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재빨리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그 만큼 소련의 침체를 깊게 했다는 점이었다. 소련에서도 인터넷과 비슷한 네트워크망을 연결하려는 기획은 있었다. 이른바 "[[오가스]]"로 그대로 컴퓨터 네트워크망을 통해서 소련의 중앙경제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발상으로, 연구시설은 물론이고 각 지방의 공장, 농장들까지 컴퓨터로 연결해서 물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인데, 당시 소련 내 부실한 유통체계로 인하여 물자공급이 원활하지 않던 소련경제의 비효율성을 고려했을 때 획기적으로 보였다. 실제로 1970년대에 미국의 [[알파넷]] 계획이 입수되면서 오가스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지만 재정부처와 경제학자들이 반대하고, '''기반시설을 구축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추진동력을 잃어버렸다. 당시 소련의 국토와 경제운용 방식을 고려했을 때, 네트워크망은 운영에 필요한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제대로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부와 경제학자들의 지적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과제였다. 또한 정부가 주도하는 국책 사업으로 진행하려다 보니, 민간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량이 적었다. 실제로 인터넷의 아버지 격으로 불리는 [[알파넷]] 또한 처음에는 국방부와 대학 사이 [[인트라넷|내부통신망]] 정도로 활용되다가, 여러 대학들이 같이 참여하면서 점차 주도권이 국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 오늘날 민간 중심의 [[인터넷]]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가스 계획은 이후로 여러번 재추진이 이루어졌지만 개발자가 1982년에 사망하면서 결국 기초망 정도만 깔리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후 1980년대말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소련에도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오늘날 옛소련 국가들의 정보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