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경제 (문단 편집) === [[자원의 저주]] === >Е.ГАЙДАР: Собственно, дата краха СССР, когда история была уже сыграна, она хорошо известна. Это, конечно, никакие не Беловежские соглашения, это не августовские события, это 13 сентября 1985 г. Это день, когда министр нефти Саудовской Аравии Ямани сказал, что Саудовская Аравия прекращает политику сдерживания добычи нефти, и начинает восстанавливать свою долю на рынке нефти. После чего, на протяжении следующих 6 месяцев, добыча нефти Саудовской Аравией увеличилась в 3,5 раза. После чего цены рухнули. Ну. Там можно смотреть по месяцам — в 6,1 раза. >가이다르: 소련이 무너진 날은 충분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날은 당연히 벨라베자 조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8월 쿠데타|8월의 사태]]가 일어났던 날도 아니며, 그 날은 1985년 9월 13일이었습니다. 그 날은 사우디 아라비아 석유부 장관이었던 아흐메드 야마니가, 사우디 아라비아는 석유생산 억제전략을 중지하며, 석유 시장에 자국의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선포한 날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다음 6개월 동안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생산량은 3.5배나 증가하였습니다. 그 날 이후 (석유) 가격은 무너졌습니다. 몇 달 단위로, 6.1번이나요. > >Е.АЛЬБАЦ: В 6 раз они рухнули? >알바츠[* 예브게니야 알바츠(Евгения Альбац). 진행자이다.]: 6번이나 무너졌다고요? > >В 6 раз. Если смотреть долгосрочную перспективу – в 4 раза. После чего, собственно, история СССР была полностью сыграна.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4번입니다. 그날 이후, 당연히도, 소련의 역사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 > 예고르 가이다르, 에호 모스크바와 진행한 인터뷰, <제국의 붕괴> 중 [[http://echo.msk.ru/programs/albac/44499/|출처]] 경제학자들 중에는 소련의 경제가 지나치게 석유에 의존했으며, 70년대 고유가로 인해 벌어들인 외화를 자국의 군수산업과 중공업에 투자해왔다가 80년대 저유가로 한순간에 몰락했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일부 학자들은 이에 단순히 소련이 자원에 의존하여 몰락했다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지만, 그럼에도 자원의 저주는 1980년대 소련경제이 맞이한 위기를 설명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자원의 저주를 둘러싼 중점이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소련의 주요 수출 대상국에 대한 고려가 없다.''' 소련의 주요 수출품이 원유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요 수출국은 미국과 유럽이 아니라 같은 공산권이었다는 점이다. 지금의 입장에서는 석유시장이 하나이므로 세계시장의 석유값이 동일하지만 당시에는 이원화된 시장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서방과의 무역과 달리[* 당시 소련은 소련 루블과 달러의 교환이 어려웠기 때문에 석유 대금을 주로 경화로 결제받았다.] 공산권 간 무역은 경화결제 비율이 높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 체제의 비효율성을 간과한 설명이다.''' 소련은 냉전 시절 사회주의권 국가들 사이 이루어진 무역은 크게 이익을 내기 어려웠다. 우선 코메콘이 위치한 동유럽 국가들의 소득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 아니었기에 일반적인 [[기축통화]]를 통한 결제가 어려웠으며, 일반적인 무역처럼 국제가격에 따라 주고 사기 어려웠다. 또한 소련은 사회주의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석유]], [[석탄]], [[천연가스]]같은 천연자원을 저렴하게 공급했다.[* 북한도 소련으로부터 비슷한 혜택을 받아 소련이 무너지는 1980년대 말까지 경제운영에 필요한 천연자원을 저렴하게 공급받았으며, 소련이 붕괴한 이후 저렴한 천연자원 공급처가 사라지면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된다.] 대신 사회주의권 국가들로부터 (소련으로부터) 지정된 가격에 따라 필요한 품목을 원하는 만큼 할당하여 보상받았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와 교역을 제외하면 코메콘 체제 내부 무역에서는 소련과 사회주의권 국가들 모두 국제시장 가격에 따라 차익을 얻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즉, 소련은 사회주의권 내부 교역에서는 큰 수익을 얻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국제시장의 가격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 '''계획경제에 대한 고려없이 시장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소련의 경제는 계획경제이므로 매년 GDP가 일정하게 성장했다. 만약 석유가격이 소련 재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적어도 석유가격이 4배가 뛴 제1차 오일쇼크 때에는 최소한 상당한 흑자를 주어야 하고, 1985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에 의한 석유가격 하락에는 그에 따른 적자가 발생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소련의 경제는 1970년이나 1980년이나 1990년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석유수출을 통해 얻은 수익을 중공업이나 군수품에 투자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자유시장경제와 WTO체제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수출을 통해서 얻어진 외화를 다른 곳에 투입하거나 외화보유고를 높여서 이를 기반으로 재정적자를 매꾸거나 등은 지금과 같은 국제무역시장에서나 먹히는 이야기이다. 소련의 입장에서 미국의 화폐를 얻어도 어차피 이 외화보유고를 쓸데가 없다. 차관을 들일 일도 없고, 국채를 발행할 일도 없다. 기껏해야 수입품에 대한 결재정도에 쓰일 뿐인데, 수입품이 주로 소비재이다보니 그렇게 많이 들이지도 않았으며, 수입도 모든 것이 국가의 주도에서 운영된다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소련경제가 서서히 침체되기 시작한 1980년대 당시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지 않은 분석이다.''' 1980년대 소련은 당장 미국과 벌이는 군비경쟁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재정적으로 막대한 전비를 소모하고 있었고, 여기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이후 1986년에는 [[체르노빌 사건]]마저 발생했다. 당시 소련정부 입장에서는 당장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세수가 지속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유가마저 하락하자 연방정부가 그나마 기대할 수 있었던 수익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소련이 앞서 설명한 것처럼 WTO체제나 자유시장경제처럼 작동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석유수익의 감소는 실제로 이후 80년대 후반 내내 소련 붕괴까지 영향을 끼친다. 당장 1980년대 후반부터 소련 사회 주요 건설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한편, 정치적 개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더불어 경제가 마비되기에 이른다. 심지어 1980년대 후반에는 고르바초프가 당시 소련보다도 경제 수준이 떨어지던 [[한국]]에까지 차관을 빌리러 다니기까지 했다. '''즉, 자원의 저주가 소련을 망하게 만든 것은 아니지만, 자원의 저주는 소련이 취약해지던 시점에 날라온 치명타였다.''' 물론 이 치명타가 아니었다고 해도 소련 경제는 파국을 벗어나기 어려웠겠지만, 적어도 소련 경제가 처한 병 중에서는 심각한 병에 속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