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경제 (문단 편집) == 천연자원 산업 == 소련은 압도적인 세계 최대의 자원 부국이었다. 소련이 대외적으로 외화를 벌어들인 주요 루트는 널리 선전된 군수 산업도 철강 산업도 아니었다. 군수 산업은 소련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무기 수출이 소련 경제에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많은 예산을 잡아먹었던 우주 개발 분야는 경제적 이윤 창출과는 무관한 미국과 체제 경쟁의 산물로, 경제적 관점에서는 이윤이 아니라 천문학적인 예산을 소모하여 국가 재정에 부담을 안기는 천덕꾸러기였다. 소련 최대의 산업은 석유 산업이었으며, 석유 이외에도 천연가스 등 천연 자원 수출이 소련 외화 수입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소련은 석유, 천연가스, 수력, 원자력 등 전세계 에너지의 20% 이상을 생산하는 세계최대의 에너지 자원 부국이었다. 소련의 가채 석유 매장 추정량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2위이며, 소련은 세계 1~2위를 오가던 세계 최대의 산유국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기간 동안 소련은 [[중동]]을 훨씬 능가하는 산유국이었다.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세계 1~2위의 산유국이었고, 러시아 혁명과 적백 내전의 여파로 몇년간 3위로 밀려났지만 1927년 2위를 회복한 후 1973년까지 세계 2위 자리를 쭉 유지했고, 1974년 오일 쇼크 시기에 세계 1위로 올라선 후 소련이 망하던 1990년까지 계속 세계 1위의 산유국 자리를 유지했다. 이미 19세기부터 러시아의 카스피해 유전은 세계 최대의 유전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석유 탐사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볼가]] [[우랄 산맥]], [[시베리아]], [[북해]] 등 드넓은 소련 영토 곳곳에서 광대한 유전이 발견되어 소련은 압도적인 석유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련은 처음에는 석유를 자국에서 소비하고 이웃 공산권 위성국가들에게 수출하다가 볼가 우랄 유전이 개발되면서 산유량이 대폭 증가했고 이에 1950년대 후반 미국 등 서방과 급작스런 관계 개선을 시도하며 석유를 서방국가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0년대 서방 기술력으로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석유 채산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1980년대 중반 유가가 폭락했다. 그러자 석유 산업으로 경제를 지탱하던 소련은 큰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전비 지출, 엎친데 덮친격으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수습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지출되면서 소련 경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석유에 이어 천연가스 수출도 상당한 외화수입의 원천이었다. 소련은 압도적인 세계 1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쟁 수행을 위해 천연가스를 대대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히틀러는 소련의 군수 에너지 공급에 타격을 주기 위해 소련의 석탄 탄광 지대를 점령했고, 이에 석탄 공급이 어려워지자 [[스탈린]]은 석탄의 대안으로 천연가스 공급을 대폭 늘리라고 지시했다. 이에 소련은 즉각 대대적인 가스 개발에 착수했고, 가스 파이프라인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후반 시베리아 등에서 막대한 천연가스 매장이 확인되었고, 당시 막 정권을 잡은 [[흐루쇼프]]는 천연가스를 서방에 수출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당시 서유럽도 산업 발전에 따른 천연가스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소련은 천연가스를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결국 1960년대 중후반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과 천연가스 수출 협정을 맺는데 성공하여 서방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프라하의 봄]])이 벌어지자 소련에 대한 경계가 높아졌고 소련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서유럽에서 높아지기도 했지만, 서유럽의 좌파 정치인, 지식인들은 오히려 소련과 경제협력을 통해 개방을 유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고 소련의 천연가스 수출은 70년대에 급증했다. 70년대에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서유럽은 석유 의존을 줄이고 천연가스 사용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기 시작했고, 이에 당시 세계 1위 산유국이었던 소련은 유가 폭등에다가 천연가스 수출이 급증하는 쌍끌이 경제 호재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게 되었다. 오일파동 이후 스페인,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벨기에 등에도 천연가스 수출이 이루어지면서 서유럽 전체에 가스를 공급하게 되었다. 한편 서유럽에서는 천연가스를 과도하게 소련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70년대 중반 독일(서독), 프랑스, 오스트리아가 공동으로 이란에서 천연가스를 개발 수입하기로 공동 협정을 맺었지만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 이란과 서방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중단되고 말았고, 소련에 대한 유럽 천연가스 의존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밖에도 소련의 드넓은 국토에 엄청난 천연자원이 매장되어 있었다. 주기율표에 있는 모든 원소가 매장, 채굴 가능했고, 석탄, 철광석, 동, 니켈, 망간, 아연, 코발트, 텅스텐, 수은, 보크사이트, 연 등은 세계 1위의 매장량을 자랑했다. 그밖에도 금, 티타늄, 알루미늄, 석영, 다이아몬드, 우라늄 등 각종 천연자원, 원자재, 에너지들이 채굴되어 수출되었다. 이처럼 소련은 압도적인 세계 최대의 자원 부국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 낙후된 기술과 설비로 인해 갈수록 자원 산업의 경쟁력이 뒤쳤고 이에 소련 정부의 고민은 깊어져갔다. 80년대말 우리나라 노태우 정부와 소련 간의 관계가 크게 개선됨에 따라 당시 [[고르바초프]] 정권은 극동 시베리아 자원 개발을 두고 한국에 기술 협력을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소련이 무너지고 말았다. 1991년 소련의 해체 후에는 석유 산업을 포함한 전반적인 경제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면서 90년대 러시아는 극도로 어려운 경제 상황을 맞이했지만, 이후 올리가르히를 내세워 석유 및 천연가스 산업을 재건하였고 러시아의 경제도 회복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