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림사 (문단 편집) == 역사 == 서기 [[495년]] 천축([[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하였으며, 이후 서기 527년 천축에서 온 [[달마|달마대사]]가 소림사에서 수련하여 돈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흔히 달마대사가 소림사 무술의 시조로 알려진 것과 달리, 2005년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5/01/21/200501210500018/200501210500018_2.html|기사]]에 따르면 소림무술의 시조는 소림사 2대 주지인 초우선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달마 당시에는 소림사란 절은 없었다는 말도 있다.] 달마는 이후 중국 [[선불교]]의 아버지로 간주되며, 소림사는 선불교의 본거지로 알려지게 된다. [[중국]] [[선종(불교)|선종]]의 대표적인 사찰로 유명하다. 실제로 [[도교]]의 중심 도관 중 하나인 [[무당파]]와 마찬가지의 케이스인데, 스케일 면에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다. [[북송]] 대에는 이미 [[승려]]가 7천 명이 넘어서 이미 숭산에 수많은 말사나 암자를 두어서 공부와 수련 등을 행했고, 소림사 자체는 중앙 총괄본부 정도의 위치로 모여서 회의하는 기능밖에 없었다고 한다. 설화에 의하면 소림 무술이 처음 창시된 시기는 [[당나라]] 때로 전설에 따르면 [[수나라]] 말기에 [[이세민]]이 [[왕세충]]과 싸울 때 13명의 소림사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관련 사료에 의하면 원래는 승려들이 성에서 내응해 공성전을 도운 정도였지만, 후대에 가면서 승려들이 감옥에 갇힌 이세민을 구출했다는식으로 와전되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이후 이세민은 [[당나라]]의 황제가 된 뒤 소림사에 크게 보답했다고 한다. 이후 [[명나라]] 초기 사료에 따르면 [[원나라]] 말기에 소림사를 [[홍건적]]들이 습격해서 [[불상]]의 금박을 벗기고, 복장유물[* [[불상]] 내부에 공간을 마련하고 넣어두는 예물. [[불경]]이나 조각들이 흔하다. 그리고 이름 있는 고승이 열반하면서 남긴 사리도 포함된다.]을 찾기 위해서 불상을 파괴해서 승려들이 다 도망가고 홍건적의 난이 진압될 때까지 한 명도 못 돌아왔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때 불목하니로 있던 긴나라왕이 [[불쏘시개]] 들고 [[홍건적]]을 다 때려잡았다고 하는데 전설은 전설일 뿐.[* 여담으로 [[량치차오]]는 이 일화를 당나라 때의 일화랑 슬쩍 짬뽕하였다. 당시 중국은 열강들의 침공으로 열악한 상황이라 이런식으로 무술 전통을 강조하여 국민들이 무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게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실제로 소림 무술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시기는 [[명나라]] [[가정제]] 때부터로, 이때 유대유의 '정기당집', 하양신의 '진기' 등 일부 사료에 소림 무술이 등장하며, 정기당집에 따르면 유대유가 소림 곤법이 창시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소림사를 방문하니 이미 소림사의 무술이 크게 쇠퇴해 있었기 때문에 승려 2명을 군대로 불러서 3년간 곤법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소림 무술이 이전에도 존재한 건 사실이나, 이전 사료에는 나오지 않았던 소림 무술에 대한 사료들이 이 시기에 들어와서야 갑작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볼 때, 실제로 소림 무술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바로 가정제 때부터일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 무술의 원류라는 이야기도 명확한 근거는 없고 현대에 들어와서 유명해진 소림사 봉술도 이때 이후 정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소림사의 대표무술이 곤법이 되었고, 소림사는 외부의 무술들을 받아들여서 양적 성장을 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림사가 총괄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각 말사에서 알아서 수련하기에 적당한 것을 골라잡아서 수련했다. 당연히 소림사 사내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무협소설]]에서 소림사만 72종 절예 운운하면서 양으로 때우는 경향이 보여주는 것도 이런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소림사가 초창기에 [[무술]]로 유명해진 계기는 다음과 같다. [[승려]]들이 자체적으로 무술을 익히고 있는 와중에 무술 실력이 뛰어난 걸인, 맨주먹으로 살인을 하고 현상수배당한 범죄자, 낙오된 도적패, 멸망한 나라의 장수 등 온갖 부류의 무술인들이 숨어 살거나 밥을 얻어먹기 위해 이곳에 유입되었고, 그들의 노하우가 소림사에 점점 쌓이게 되어 오늘날의 소림사 무술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쇠퇴하고 다시 재건되었다. 이렇게 흘러들어간 사람들 중 유명한 것이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난징군구 사령관을 지낸 [[쉬스유]]가 있다. 1928년 [[1차 장풍전쟁]] 중에는 [[장제스]] 편을 들어 참전했다가 [[펑위샹]]의 부하 [[스여우싼]]에게 승려들이 학살당한 후 소림사가 불타버린 사건이 있으며, 1960년대에도 [[문화대혁명]]으로 큰 타격을 입어서 현재 소림사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무당파]]와 비슷하게 대부분 다른 곳에서 끌어온 무술이라는 말도 있다. 물론 후술되어있듯 [[소림72예]]와 [[심의파]], [[소림곤법천종]]처럼 소림의 원류 무술도 있긴 하다. [[남소림사]] 문서도 참고할 것. 이쪽은 아예 전설이라고 보면 된다. 숭산 외에 다른 지역에도 소림사라는 이름이 붙은 절이 있는데, 숭산의 소림사를 따라한 것은 아니고 단지 이름이 같은 것일 뿐이다. 그 중에서도 [[푸젠성]] [[취안저우]]의 소림사는 숭산의 절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남소림사라고도 불린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