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무 (문단 편집) === 포로 생활의 끝 === [[소제(전한)|소제]](昭帝)가 즉위하자, 흉노와 한나라가 다시 화친하면서 한나라에서는 흉노가 포로로 붙잡고 있는 소무 일행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흉노는 그들 일행이 죽었다고 ~~구라~~ 거짓말을 했다. 한나라의 사절이 흉노에 도착하자, 상혜(常惠)가 야음을 틈타 한나라 사신을 만나서 지난 일들을 얘기하며 사신에게 다음과 같이 선우한테 말하라고 시켰다. >'천자가 상림원(上林苑)에서 사냥하다 기러기를 잡았는데 다리에 비단편지가 매여 있어 보니 「소무 등은 황택(荒澤) 중에 있다.」라고 적혀 있던데.'[* '먼 곳에서 소식을 전하는 편지'라는 뜻인 안서(雁書)의 유래.] 사신이 기뻐하며 선우를 만나 그렇게 말하자, 선우는 좌우를 둘러보며 놀라서 한나라 사신에게 사과하고 소무 등이 살아 있다며 돌려보내게 된다. 소무는 우여곡절 끝에 한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소무와 이릉은 이별을 하고, 항복한 사람과 죽은 사람들을 제외한 8명의 속관들과 함께 소무는 한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소무는 [[시원]](始元) 6년 봄에 한나라 [[낙양]]으로 돌아왔다. 황제는 조칙을 내려 소무로 하여금 태뢰(太牢)를 받들어 무제의 묘를 배알하게 하고, 전속국(典屬國)에 임명하여 중이천석(中二千石)의 품계와 돈 200만, 전답 2경(頃), 저택 한 채를 하사했다. 상혜, [[서성]](徐省), [[조종근]](趙終根)은 모두 [[중랑]]에 임명하고 비단 200필을 각각 하사했다. 나머지 6명은 너무 연로하여 집에 돌려보낸 뒤, 한 사람당 10만의 금전을 하사하고 종신토록 세금과 [[부역]]을 면제했다. 소무는 흉노땅에 머문지 19년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얼마나 고생했는지 돌아왔을때 수염과 머리가 모두 하얗게 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