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무제 (문단 편집) == 생애 == 1646년 8월, 융무제가 복건성에서 [[청나라]] 군대에 사로잡혀 체포되자 11월, 광주에서 즉위했다. 그런데 같은 달에 영명왕(永明王) [[주유랑]]도 조경(肇慶)에서 즉위하니 그가 영력제이다. 그런데 두 세력은 똑같이 청군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양보하지 않았다. 굳이 보면 주유랑의 정통성은 [[넘사벽]]급이다. 주유랑은 [[만력제]]의 손자이지만 주율오는 [[홍무제]]의 23남 당왕 주경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력한 청군을 두고 연합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한심하게도 광주 삼천에서 교전했다. 이 전투에서 주율오는 대승을 거두고 기뻐했으나,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이 틈을 타 12월 말, 청군이 광주로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원래 세력이 미약했고 주유랑과의 싸움으로 약화되어 있던 그의 군대는 손쉽게 청군에 패배했고, 주율오는 광주가 함락되자 [[자살]]했다. 그는 후사가 없었으므로 [[주상청]]이 뒤를 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