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사화 (문단 편집) === 구금 === 426년, 소사화는 중서시랑(中書侍郞)에서 도독청주서주동관제군사(都督靑州徐州之東莞諸軍事), 진무장군(振武將軍), 청주자사로 전임되었다. 이때 사마랑지(司馬朗之), 사마원지(司馬元之), 사마가지(司馬可之) 형제가 발간현(發干縣)에서 반란을 계획하자, 소사화는 북해태수 소왕지(蕭汪之)를 파견하여 사마랑지 형제를 토벌하고 그의 잔당을 모두 평정하였다. 431년, 경릉왕 유의선 밑에서 사마(司馬), 남패군태수(南沛郡太守)로 제수되었다. 그러나 부임하기 직전, [[북위]]군이 남진하여 단도제가 퇴각하자 소사화는 북위의 대규모 침공을 염려하여 청주를 포기하고 평창(平昌)으로 달아났다. 소사화는 참군 유진지(劉振之)에게 하비(下邳)에 진수하라고 명했는데, 유진지는 소사화가 청주를 포기하고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달아났다. 다행히 북위군이 휴병하고 남하하지 않았으나, 동양군에 축적되어 있었던 물자들을 백성들이 모두 불태웠기 때문에 소사화는 이 문제로 인해 정위(廷尉)로 소환되어 추궁을 받고 상방(尙方)에 구금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