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사화 (문단 편집) === 구지 정벌과 한중 평정 === 432년, [[구지]]에서 기근이 든 한편 유송의 익주(益州)와 양주(梁州)는 풍년이 들었는데, 양주자사 견법호(甄法護)가 임지에서 인심을 상실하여 양난당이 한중을 침공하였다. 옥중에 있었던 소사화는 도독양남진2주제군사(都督梁南秦二州諸軍事), 횡야장군(橫野將軍), 양남진2주자사로 다시 기용되었다. 소사화는 출병 도중 견법호가 이미 수성을 포기하고 북쪽의 서성(西城)으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사마인 건위장군(建威將軍) 남한중군태수 [[소승지]]에게 500명의 병사들을 거느려서 서둘러 진군하도록 명했고 서융사마 소왕지에게 소승지를 따르도록 명했다. 소승지는 길을 따라 진군하여 1,000명에 가까운 병사들을 얻었다. 433년 정월, 소승지가 오두(磝頭)를 점령하였다. 한편 양난당은 한중을 약탈한 뒤 서쪽으로 돌아갈 때 수하인 보국장군(輔國將軍) 양진2주자사 조온(趙溫)을 남고 양주를 수비하게 하고 위흥태수 설건(薛健)를 황금성(黃金城)으로 파견했다. 소승지는 오두를 점령한 뒤 음평태수(陰平太守) 소탄(蕭坦)을 황금으로 파견했다. 설건의 부장인 강보(姜寶)는 황금성과 1리 떨어진 철성(鐵城)을 점령한 뒤 나무를 베어서 진군을 막고 있었는데, 소탄은 철성과 황금성을 공격해 함락하였다. 2월, 조온이 다시 설건과 구지의 영삭장군(寧朔將軍) 빙익태수(馮翊太守) 포조자(蒲早子)를 이끌고 소탄의 군영을 공격하자, 소탄이 이를 격퇴했지만 소탄 자신도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 소승지의 사마 석문조(錫文祖)가 황금성으로 진군했고 소왕지와 그가 이끄는 보병과 기병 500명이 뒤이어 도착하였다. 한편 평서장군 임천왕 [[유의경]]이 배방명과 3,000명의 군사들을 파견했고 소승지 또한 황금성으로 진군하여 포조자와 설건 등이 하도(下桃)로 물러났다. 소사화는 자신의 행참군 왕령제(王靈濟)에게 일부 군사들을 이끌고 양천(洋川)을 따라 남성으로 진군하도록 명했다. 구지의 능강장군(陵江將軍) 조영(趙英)이 험한 지세를 의지하여 굳게 수비하자, 왕령제는 조영을 격파하여 사로잡았다. 이후 왕령제는 남성으로 진군했지만 성이 비어있었고 물자도 없었기에 다시 군대를 이끌고 되돌아가서 소승지와 합류하였다. 3월, 소승지가 군대를 이끌고 아공고(峨公固)를 점령하자, 구지의 양난당은 자신의 아들인 양화를 보내 한진(漢津) 너머에 진을 쳤다. 양화는 조온, 포조자, 좌위장군(左衛將軍) 여평(呂平), 영삭장군 사마비룡(司馬飛龍)을 거느리고 총력을 동원하여 소승지를 공격하려고 했다. 구지의 병사들은 수십 겹으로 소승지의 군대를 포위 공격하여 소승지의 군사들이 활과 화살을 쏘아도 통하지 않았고 또한 쇠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어서 창이 통하지 않았다. 이에 소승지는 창을 몇 자의 길이로 자르고 큰 도끼를 써서 창 하나로 구지군의 병사 10여 명을 죽였다. 구지군은 소승지의 반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군영을 불태운 뒤 달아났다. 한중이 평정되면서 유송군은 상실한 영토를 수복하고 가맹수(葭萌水)에 성채를 설치하였다. 유송이 들어서기 이전 동진의 권신 환온이 동진을 찬탈하면서 환희(桓希)를 양주자사로 삼았다. 환희가 패주한 뒤 [[구지]]가 한중(漢中)을 점령했고 범원지(范元之)와 부흠(傅歆)이 각각 자사를 맡으면서 위흥(魏興)에 치소를 두었으나 실질적인 통치 범위는 위흥군(魏興郡)·상용군(上庸郡)·신성군(新城郡)에 불과했다. 뒤에 색막(索邈)이 자사로 부임하면서 남성(南城)에 치소를 두었으나, 남성이 약탈당하면서 수비에 어려움을 느꼈던 소사화는 치소를 남정(南鄭)으로 옮겼다. 한중을 평정한 뒤 소사화는 영삭장군으로 진호되었으며, 소승지를 태자둔기교위(太子屯騎校尉)로 임명하였다. 조정에서는 소사화에게 한중을 토벌한 것에 대해 보고를 올리고 사관에게 이를 기록하게 했다. 한편 견법호는 옥중에서 사사되었는데, 견법호의 동생인 견법숭(甄法崇)이 지방관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감옥을 관리하는 관리는 유의륭의 명에 따라 견법호가 병으로 죽었다고 보고를 올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