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서노 (문단 편집) === 기록의 문제점 === <고구려본기>는 말할 것도 없고, <백제본기>의 본문도 비류, 온조 형제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간략하다. '소서노'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소서노에 대한 기록이 그나마 가장 자세한 것은 상기된 <백제본기>에 "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一云]"로 인용되는 묘한 문서다. 백제본기에서 온조왕으로 시작되는 기록을 '본문', 비류왕으로 시작되는 기록을 '일운'으로 나타내면, 이 두 기록은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보인다. 1. '''비류, 온조 형제의 혈통''' * 본문: 비류와 온조가 모두 주몽의 아들이다. * 일운: 비류와 온조가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의 아들이며, 주몽은 양아버지일 뿐이다. 1. '''백제의 시조''' * 본문: 백제의 시조는 온조왕이다. * 일운: 백제의 시조는 비류왕이다. 1. '''오간, 마려 등 10명의 신하''' * 본문: 도읍을 정하는 데 이들의 발언이 기록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일운: 남하를 주도하는 것은 비류로 되어 있으며, 10명의 신하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1. '''소서노''' * 본문: 소서노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온조의 어머니는 단순히 졸본부여 왕의 딸로, 그로부터 추모로 왕위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만 하고, 심지어 남하할 때 동행했는지조차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 일운: 소서노가 자신의 재산을 이용해 주몽이 나라를 세우는 것을 도왔다고 하여 중요한 소임을 맡은 인물임을 강조한다. 이뿐만 아니라 형제가 어머니인 소서노를 모시고 남하했다고 적시한다. 1. '''형제의 남하 시점''' * 본문: 아직 추모가 왕이고, 유류가 태자가 되자 스스로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 일운: 추모가 죽고 유류가 왕위를 계승하자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가 기록될 고려시대 중엽에는 백제 초기에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는 두 종류의 문헌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전자의 문헌은 온조와 10명의 신하가 맡은 소임을 강조하며, 후자의 문헌은 비류와 소서노가 맡은 소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조 설화의 차이에 근거하여 일부 사학자들은 백제의 건국집단을 두 개 이상으로 가정하기도 하며, 아예 비류를 시조로 하는 다른 나라([[비류백제]]라고 가칭됨)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비류국]]의 마지막 왕인 [[송양]]왕과, 비류국에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소노부(=비류나부)를 소서노, 비류와 연관짓는 자도 있다. 일단 '비류'라는 이름부터가 한자까지 동일하고, '소서노'와 '소노'의 발음이 비슷하며, 소노부가 상당 기간 왕비족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간과하고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삼국시대 시조모들 중에서 유일하게 신으로 추존되지 않고 인간으로 남은 사람이다. 그녀의 아들 [[온조]]가 삼국시대 건국자 중 유일하게 난생설화가 없는 것처럼 신화적 관점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의의를 갖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