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설가 (문단 편집) == [[순수문학]] 소설가 == [[대한민국]]에서 흔히 소설가라고 지칭되는 순수문학의 소설가는 일만 고되고 돈은 벌기 힘든 '사서 하는 고생'의 대표격인 직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만족하면서 글을 짓는 사람들은 사서 하는 고생이라기보단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는 건 상당히 힘들다. 업무와 창작의 스트레스에 이중으로 치이면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이 있는데도 소설가로 등단하는 사람들은 자영업이거나, 회사에서 어느 정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긴 전문직 자격증을 따고 사무소를 차리고 연금이나 받아서 생활에 지장이 없이 취미나 [[딜레탕트]]로 즐기는 사람 혹은 정말로 출중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반대로 직업이 없고, 특히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은 사람이 "난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 특히 [[순수문학]]만 전공해서 먹고 살겠다는건 "난 부모 등골을 빼먹고 살겠다"와 같은 말이다. 창작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엄청난데, 주변에서는 그저 집에서 노는 걸로만 보는 시선 또한 부담스럽다. 유명 작가들의 대작들이 만들어진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료를 수집하고 설정을 다듬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 즉 앞에서 나온 대로 돈벌이 걱정이 없어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작을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문호들과 자웅을 겨룰 만한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라면 그나마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포기 못하는 작가는 생계가 어려운 사례도 많다. 먼저 소재가 필요하고 그 소재로 이야기로 풀어나가야 하며, 그 이야기에는 당위성이 맞아 떨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소설이 나오기 때문에 소설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생활은 일반인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 대부분. 물론 무명으로 들어가면 차라리 만화가가 낫다. 장르소설을 제외하고 다른 무명소설가 같은 경우는 등단하기 전까지는 꿈도 희망도 없다. 또한 등단을 한다고 할지라도 상황이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국내 소설 시장은 매우 열악하며, 흔히 말하는 주류문학의 경우는 더하다. 유명 작가는 1년에 한 명 배출될까 말까 한데 등단하는 소설가는 연간 100명을 그냥 넘어간다. 그나마 흔히 말하는 '메이저'만 쳐도 30명을 가뿐히 넘어간다. 각종 신문사, 메이저 급의 문예지, 각종 대형 문학상 수상자들까지 합하면 소설가는 매년 쏟아지지만 성공하는 이는 드물다. 참고로 원고료에 대해 서술하자면, 메이저 문예지에서 원고 청탁을 할 경우 작가의 등급을 나누는데, 작가의 등급은 신인작가, 중견작가, 원로작가로 나뉘기 마련이다. 이 중에서 신인 작가는 등단 1년차부터 10년차까지. 다시 말해서 등단하고 10년 동안은 신인 작가 대접을 받는다는 말이다. 심지어 신춘문예에 등단한 적이 있던 사람들마저도 생계가 어려워서 다른 필명을 쓰고 신인 작가 응모전에 글을 내는 일도 적지 않다. 소설가, 시인 등 문학 그 자체가 이미 직업인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대한민국 땅에서 인세 받아서 먹고 살 수 있는 작가는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고 한다. 당장 그들 자신도 대학 교수다 세미나다 에세이다 칼럼이다 하며 마감에 치이고 장난이 아니다. 소설가 [[이외수]]는 TV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서, >제가 생각하는 기인의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술|글이나 그림,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다 말립니다. 춥고 배고프다 이거지요. 저는 30년 동안 글을 쓰면서 제 마누라와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말했다고는 하지만, 이외수 본인도 지역일간지 기자, 교생 시절, 등단 초창기부터 결혼 초기에 이르기까지만 해도 가난함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삶을 살았었다.] 이건 기인 중에 기인이지요." 라는 말을 남겨서 동일한 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좌절을 주었다. 70~80년 전과 비교해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다. 오늘날에는 일부, 극히 일부의 스타 소설가들만이 유명인사 대접을 받지만, [[일제강점기]]에 유명 소설가들은 그야말로 '스타'였고 오늘날 가장 명성 있다고 하는 작가들과도 현저히 다른 대접을 받았다. 당시 여성잡지들의 기사는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선생 집의 인테리어가 어떻고, [[염상섭]]의 부인이 어떻고, [[김동인]]의 부인이 추천하는 요리는 뭐고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사람들의 꿈이자 롤모델 같은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연예인 정도의 유명인사이자 신 지식인들의 대표였다. 물론 무명작가는 힘들었겠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소설가가 스타 대접을 받았던 것, 그리고 1970년대 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소설가의 위상이 아주 높았던 것은 국내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른바 '철학의 부재'라는 상황을 꽤 오랫동안 겪었었다. 알기 쉽게 서술하자면, 박정희 정권 시절에 정권에 대한 비판을 정면으로 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어떤 사상을 말하더라도 지식인 계층에서 학술서로 내게 되면 살아남기도 어려웠다. 즉 철학이 마땅히 제시해야 했던 시대의 흐름과 시대 비판, 다른 학문들이 행했어야 했던 여러 영역들을 소설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문학 특유의 돌려말하기와 생략은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 시절에는 소설이나 시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읽기도 어려웠고 지식을 얻기도 힘들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여전히 이광수의 흙이나 단종애사 같은 작품을 읽고 눈빛을 반짝이는 소년들이 많았다. 그런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민주화의 시대가 오고, 소설은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원래대로 다른 학문들에게, 혹은 철학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지금 위상이 격하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위상이 비상식적인 상황 아래에서 비상식적으로 높았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매체들의 비약적인 상승[* 시야를 전세계로 넓혀도 신세대들은 보통 문자 매체보다 그림 매체나 영상 매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과 [[IMF]] 이후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줄어들게 되자 소설가들이 힘겹게 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소설가들은 민족의 스승 역할을 했지만, 지금의 소설가들은 그런 역할을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 때의 시선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 소설을 마냥 '어려운 철학의 표현'이나 '강렬한 사회 비판'이 아니면 소설로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이 서로 일부러 모른 척을 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큰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이 그 예. 장르문학을 읽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할 때와 순수문학을 읽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의 반응의 차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살아도 모자랄 상황에 이것은 크나큰 결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소설가들은 창작과 편집사에 대한 갈등 그리고 생활고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술과 담배를 많이 마시고 피워 암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소설가는 등단한 자들에게 사용하는 단어며, 등단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소설을 낸 사람들은 작가다'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이문열]]이 신문 사설에서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고, 소설가는 르포 작가 등과 함께 어디까지나 [[작가]]의 하위 분류에 속한다. 한국보다 훨씬 사정이 좋은 미국도 이름없는 작가들은 마찬가지이다.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왜 스누피가 나오냐면 바로 스누피가 소설가를 꿈꾸면서 언제나 자기 집 위에서 타자기로 글을 쓰며 출판사로 보내는 게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거부당한다. 이 책자에서 스누피가 나오는 이 만화 장면들과 같이 실제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33명의 글이 나와 있다.]에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33명의 이름없던 시절 이야기와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에서도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 잭 캔필드의 얘기라든지. 이 책에서 잭 캔필드는 출판사에서 퇴짜 놓는 일이 빈번하다며 여러 사례를 올린다. 가령 <스텝스>로 전미 도서상을 수상한 작가 코진스키는 신인 작가의 등단이 어려운지 보여주고자 작가 이름과 소설 제목을 바꿔 출판사에 <스텝스>를 보냈는데 14여곳이나 되는 출판사들이 죄다 거부했다고 한다. 심지어 <스텝스>를 출간한 랜덤하우스 출판사에서도 거절했다고. --이건 표절이니까 그런 거 아닌가--[* 물론, 아직 출간되지 않아 담당자 정도만 아는 시점에서 어떻게 되는지 보이려 넣어본 것일 것이다. 심사하는 이들을 전부 바보로 보지 않은 이상 전미 도서상 수상작을 아무도 못 알아볼 거라고 넣었을 리가 있나.] 여기 나온 작가 가운데 하나인 [[시드니 셸던]]이 쓴 글이 대략 이렇다.[* 참고로 시드니 셸던 역시 생활고 때문에 방송 작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먹고 살다가 50세가 넘어서 데뷔하여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오래 살아서 베스트셀러 작가 생활을 길게 했다는 점] >응? 스누피... 소설을, 잘 팔리고 인정받는 걸 쓰고 싶다고? 참 쉽지. 가르쳐 줄까? >- 우선, 자기가 정말, 진짜로 좋아하는 글을 고르는 거야! >- 멋지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글 쓰는 실력을 갈고 닦으라고!! >-모든 단어들이 빛을 발할 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다시 써라. 아니 10년이라도 좋다며 생각하며 써! >그 다음? 숨을 죽이고 기도해 스누피. 어느 신이든지 무신론자라면 자신의 행운이라도 걸고 기도해. 그리고 1년이 걸려도 2년이 지나고 기도하든지 아니면 누구에게라도 빌든지 하렴. 이게 끝이야. 어디서나 소설가는 어렵다는 걸 절실히 보여준다. 헌데 한국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이웃나라 일본은 또 다르다. 일본의 인구가 한국의 두배 가량 되는 것도 있지만 독서인구가 정말 질릴정도로 많아 교수가 학술서를 출간해도 인세를 받아 건물 한채 사는, 한국으로서는 정말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책 좀 읽어라 한국인들아~~ 이런 차이를 출판사의 손익분기점 입장에서 보자면, 출판사의 입장에서 학술서는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 돈이 그리 벌리지 않는다. 학술서는 최근의 연구를 반영하여 책을 개정하는 일이 많다. 이런 개정을 할 때마다 책이 팔려야 출판사가 먹고사는데, 출판사 입장에서 책의 손익분기점은 대략 500부 정도로 본다. 한국은 책을 내면 책을 사주는 분량이 100여부인데 반해, 일본에서는 국가기관이나 여러 도서관들에서 '''일단 사주는 물량'''이 500부가 넘는다. 따라서 잘 안 팔리는 학술서라도 일단 책을 내면 손익분기점은 보장된다. 한국에 비해 일본의 창작활동이 활발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손익분기점의 차이이다. 그런데 학술서보다 대중들의 접근성이 좋은 소설은 오죽하겠는가. 이렇게 작가들이 오로지 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니 좋은 글이 나올 수밖에 없다. [[노벨 문학상]]이니 하는 것이 나라의 대외 인지도도 분명 존재하지만 기본적인 퀄리티가 보장돼야 하는데, 일본은 이런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은 것. 한국에서는 백 만 권이 팔린 소설부터가 말 그대로 '손에 꼽으며' 십 만 단위만 팔아도 한국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큼 완전 대박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책]] 그 자체를 안 읽는 것은 아니며 아동도서인 [[Why?]]는 누계 4,000만 부를 팔았다. 책을 유희가 아닌 실용 목적으로 읽는다고 보는 것이 맞는 해석이다. 한국 도서 판매량의 상당 부분은 문제집이나 아동교육만화 같은 실용 서적이다. 일부 소설가의 경우는 작품의 인기 등에 힘입어서 대중적인 인기를 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이외수]]는 문학계를 넘어서 이미 대중적인 인물로 급부상하였으며 그 외 소설 [[도가니(영화)|도가니]]의 영화화와 인기에 힘입어 인지도가 높아진 소설가 [[공지영]] 등도 있다. 한편으로는 정치 및 사회 쪽에 개입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소설가 [[이문열]]은 '''정치를 떠난 문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발언을 하여서 정치와 문학을 연계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논란과 의심을 받기도 하였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부고(訃故)가 TV 뉴스에 올라온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소설가 [[이청준]], [[박완서]], [[박경리]] 등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