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소경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대구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하지만 연고지 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는 [[일본프로야구]]의 규정과 동일하게(참고로 이 규정이 만들어진 건 [[장훈(야구선수)|장훈]] 때문이다.) 외국인이라도 중학교 이상 학교에 다니면서 [[대한야구협회]]의 등록선수로 활동하였다면 국내선수에 준하여 신분을 인정받는다. 그리하여 최초의 [[대만]] 국적 외국인 [[KBO 리그]] 선수는 2018년 [[NC 다이노스]]에서 영입한 좌완투수 [[왕웨이중]]이 되었다.([[대만 프로야구 리그|대만 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직접 영입하기 위해서는 해당 선수 연봉의 2.5배를 원 소속 구단에 이적료로 지불해야 하고 선수에게는 연봉의 1.5배 이상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대만 프로야구 리그|CPBL]]의 규정 때문에 그 동안에는 [[대만 프로야구 리그|대만 리그]] 출신 선수의 직접적인 영입이 없었다. 다만 [[대만 프로야구 리그|대만 리그]]가 아닌 [[미국]]에서 뛰다가 온 [[왕웨이중]]도 이적료가 좀 오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명 당시 187cm, 85kg의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최고 구속 145km/h의 공을 던지는 우완 정통파 유망주로 유명했으나, 프로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99 시즌 들어 [[이대진]], [[이강철]], [[권명철]]의 부상[* 이대진과 이강철은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 각각 어깨와 무릎 부상을 당했고, 1998년 말 [[최훈재]]와 트레이드되어 [[두산 베어스]]에서 이적해온 권명철은 시범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다.], [[임창용]]의 삼성 이적, [[김상진(1977)|김상진]]의 위암 투병으로 인해 고졸 2년차의 몸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고[* 1999 시즌 당시 해태 마운드는 1996년 [[박재홍(야구)|박재홍]]의 지명권과 트레이드된 [[최상덕]]을 비롯해 [[양준혁]]과 함께 삼성에서 이적해온 [[곽채진]], 고졸 5년차 [[박진철(야구선수)|박진철]], 대졸 3년차 [[오철민]], 대졸 2년차 [[곽현희]], 대졸 신인 [[유동훈]], 그리고 소소경 등 신진급 선수들이 힘겹게 지키고 있었다.], [[김상진(1977)|김상진]]이 세상을 떠난 [[1999년]] [[6월 10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4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통산 58경기 5승 9패 1홀드 [[평균자책점|ERA]] 6.01의 초라한 기록을 남겼으며, 2002년과 2003년에는 1군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2004 시즌 후 [[LG 트윈스]]에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LG에서도 2경기에 등판해 8점 대의 [[평균자책점|ERA]]를 찍고 2006년에 방출당하며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