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자현 (문단 편집) == 생애 == 소자현은 [[제(남조)|제]]를 건국한 [[소도성]]의 손자로 예장왕 소억의 팔남이다. 영명 연간에 태어나 영도현후에 봉해졌다. 소자현은 어린 시절에 총명하여 소억의 총애를 받았고, 영원 연간에는 급사중으로 임명되었다. 제가 멸망할 때에는 겨우 14살이었다. 494년 명제 [[명제(남제)|소란]]이 소도성의 자손들을 거의 다 죽였으나 소자현은 5세였는데 어떻게 살아 남았다. 양나라가 들어선 뒤에는 작위가 자로 강등되었지만 [[무제(양)|양무제]]가 그의 능력을 총애해 태자중사인, 건강령, 국자좨주, 시중, 이부상서 등을 역임하면서 안정적인 관료생활을 했다.[* 소연은 선양의 과정을 거치면서 소도생(蕭道生)의 자손들을 모조리 죽였으나 나머지 종실(宗室)들은 해하지 않았다. 어느날 소연을 소자현의 형 남강후(南康侯) 소자각(蕭子恪)과 동생인 기양후(祁陽侯) 소자범(蕭子範)이 알현하자 소연은 옛날 두려움과 질투로 왕족들을 살해한 여러 고사를 얘기하며 자신은 소자각 형제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소자현은 양무제와 정계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양무제가 직접 저술한 『[[통사]](通史)』를 그가 예찬하였고, 양무제의 이름으로 국학에서 편찬된 『오경의(五經義)』를 논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후한서]]』 100권, 『제서』 60권, 『보통북벌기』 5권, 『귀검전』 30권, 『효경의소(孝經義疏)』 1권, 『효경경애의』 1권 그리고 문집 20권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남제서]]』하나만 전하고 있다. 국자좨주(國子祭酒), 이부상서(吏部尙書)와 시중(侍中) 등을 역임했다. 거기에다 본인의 기록은 손실되어서 그의 기록은 오직 양서 소자각 열전에서 볼수 있다.[* 물론 자서전에는 본인의 생애보다 가문의 역사가 대부분 실려있다.] 소자현은 장중하고 검소한 성품을 지녔지만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는 면도 있었다. 소자현은 이부상서를 맡을 때 여러 빈객을 만났지만 그들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부채를 들어 자기에게 흔들기만 했다. 재능을 과신하는 면 때문인지 소자현은 죽은 뒤에 교(驕)라는 시호를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