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종(원) (문단 편집) == 생애 == [[1370년]], 원 혜종(순제)이 사망하자, 아유시리다라가 몽골 고원의 카라코룸에서 뒤를 이어서 황제로 즉위했다. 실각당했던 북원 최후의 명장 [[코케 테무르]]는 새로운 북원 황제의 세력에 참여해서 황제의 호위 임무를 맡아 수행하였다. [[코케 테무르]]가 이끄는 북원의 군대는 [[1372년]], 사막에서 [[서달]]이 이끄는 명군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 명군이 2만 명 정도 '''피살(被殺)'''[* 거의 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잔인하게 몰살시켜 피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한다.]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간쑤성에서 다시 명나라 장수 서달과 대적할 때 북원군은 심하게 몰린 끝에 패했고 다시 고비 사막으로 퇴각하고 만다. 코케 테무르는 북원군을 거느리고 다시 중원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북원의 영향력을 [[산시성(산서성)|산시성]]까지 팽창시켰다. 그러나 코케 테무르는 [[1375년]]에 사망했고, 뒤이어서 [[1378년]]에는 황제 아유시리다라도 사망하게 된다. 그의 사후 유조를 따라 이복동생인 토구스테무르가 [[천원제]]로 즉위하였다. 황후는 2명 있었는데 둘 다 고려 출신이다. 첫번째 황후는 권씨로 [[권겸]](權謙)의 딸이다.[* 권겸은 대표적인 친원파 권문세족이었는데, 딸을 황태자 아유시리다라와 혼인시킨 것으로 권력에 가까이 다가서서 [[기철]] 등과 함께 전횡을 휘둘렀지만 1356년 [[병신정변]] 당시 공민왕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권씨 사이에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딸이 1명 있었으며 이 딸은 이후 [[조리그투 칸]]과 혼인했다. 두번째 황후는 김씨로 김윤장(金允藏)의 딸이다. 김씨와의 사이에선 아들인 마이딜리발라(Maidilibala, 買的里八剌)가 있다. 마이딜리발라는 명나라에게 포로로 잡혔는데, 당시 명나라 조정에선 종묘에 그를 제물로 바치자고 주장했으나 [[홍무제]]는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숭례후(崇禮侯)로 봉하고 집을 하사해서 살게 했다.[* 신하들을 때려잡던 홍무제의 면모를 생각해 보면 다소 의외라고 느껴질 수 있을 만한 부분인데 홍무제가 숙청했던 건 권력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공신이나 신하들이었지 상관 없는 이들에게는 관대한 면모를 보이곤 했다.] 그러다가 이후 주원장이 다시 북원으로 돌려보냈으며,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니굴세그치 칸]]과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