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지충 (문단 편집) == 여담 == * 위황후는 여남왕(汝南王) 위순(韋洵)이 죽자 위순의 소지충의 죽은 딸과 [[영혼결혼식]]을 시켰다. 하지만 이후 710년, 위황후 일파가 임치왕 [[이융기]]가 일으킨 궁중 쿠데타 [[당륭정변]]으로 인해 몰락하자, 소지충은 무덤을 파내 죽은 딸의 관을 가지고 가서 세간으로부터 비웃음을 받았다. 소지충은 자신의 딸을 다시 위황후의 외삼촌인 최종례(崔從禮)의 아들 최무피(崔無詖)에게 시집보냈다. 이 때문에 당시 세간에서 나온 말이 ‘천자가 여자를 얻고 황후가 부인을 얻는다(天子嫁女, 皇后娶婦)’라는 말이었다. * 소지충은 자신에게 청렴과 검소를 엄격하게 들이댔던 인물로 빈객을 접대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소지충의 재산을 적몰할 때 집안에 있었던 그의 재산이 매우 풍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소지충이 받았던 명성과 덕망은 한순간에 추락했다. [[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713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