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크라테스 (문단 편집) === 산파술 === 추가 질문을 계속해서 [[무지의 지|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방법을 썼다. 이러한 질문 중심 교수법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혹은 산파법(산파술)[* '조산사'라는 뜻의 산파(産婆)와 같다.어머니가 산파였기 때문에 진리의 분만을 도와준다고 산파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는 석공인데, 이것도 진리를 점차 찾아간다는 것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도. 그런데 이 방법을 개발한 사람이 대표적인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스 철학자 전기작가였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Διογένης Λαέρτιος, 생몰년일은 불명. 그러나 남긴 저작을 분석으로 3세기 사람으로 추측)가 그런 기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소피스트가 이런 방법을 개발했다고 해도, 소크라테스가 산파술을 활용한 방향은, 인습과 개념의 구분을 하지 않던 소피스트들과는 정반대로, 인습에서 벗어난 개념을 정립하기 위함이므로, 소크라테스의 위상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이라고 부른다. 플라톤의 글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패턴은 1. 상대가 어떤 A 주장을 한다. 2. 소크라테스가 A 주장에 나온 단어 a의 뜻을 묻는다. 3. 상대가 a = x 라고 답한다. 4. 소크라테스가 다시 x 의 뜻을 묻는다. 5. 상대가 x = y 라고 답한다. 6. 소크라테스가 a하고 y는 서로 모순됨을 지적한다. 7. 상대는 벙어리가 된다. 거듭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도심문과도 비슷해 보이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함정에 빠뜨리거나 혹은 심문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부터 검토해 나아가는 것이다. 상대방은 이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개념이 사실은 오류가 있는 개념임을 깨닫게 되고, 당황하거나 화내거나 부끄러워하게 된다. 이를 [[아포리아]](Aporia, ἀπορία)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산파술을 사용한 이유는 그의 주상대가 [[소피스트]]라는데 있다. 당시 소피스트들이 가진 대세의 의견은 진리는 그 사람의 주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정답이란 정해진게 없고, 질문하는 사람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상대방에 맞춰서 그때 그때 대응하는 어떻게 보면 매우 유연하고, 어떻게 보면 매우 일관성이 없는 주장을 늘어놓고는 했다. 소크라테스가 지적한 것은 사유에 있어서 '''정의''' (definition)의 중요성이다. 정의를 제대로 내리지 않고 생각을 하니까 도대체 진척이란게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의 삶동안 소피스트들을 박살내면서 정의를 내리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실현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산파술에 대해서는 당대로부터 많은 불만이 있어왔다. >"선생님은 누가 질문을 하면 대답은 하지 않고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 무식한 척을 할 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답에 대한 트라시마코스의 반응. 플라톤의 <[[국가]]> 중 >"당신 자신은 누구에게도 설명하기를 원하지 않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당신의 견해를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그만 두십시오." >소크라테스를 쏘아붙이는 히피아스. 크세노폰의 <회상> 중 이에 관해서 플라톤의 경우에는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아는 것이 없는 무지자라고 말하는 것으로 항상 끝맺는 태도를 보인다. 이 점은 소크라테스가 답을 찾는 여정 자체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난 지혜를 낳지 못하네. 그리고 바로 이 점을 두고 이제껏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난했다네."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중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계속 산파술을 시전하고 다닌 끝에, 결국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역설|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는 말을 남겼다.[* [[라틴어]] 구절 ''ipse se nihil scire id unum sciat''로부터 유래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말이다. 일단 자신이 모르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남에게 배워서 아는 것이든 스스로 숙고해서 깨닫는 것이든, 진정한 앎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델포이 신전에 어떤 사람[* 소크라테스의 친구였던 카에레폰(Χαιρεφῶν)이 질문했다는 설이 있다.]이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자가 있습니까?' 라고 묻자, 무녀는 평소에 늘 쓰던 은유나 수사들을 생략[* 대표적으로 크로이소스의 신탁이 있다. 리디아의 왕이었던 크로이소스가 무녀에게, "우리가 전쟁을 벌이면 승리합니까?"라고 물었더니 무녀 曰, "크로이소스가 전쟁을 한다면, 그는 대제국을 멸망시키리라" 라는 답변이 돌아와서, 이를 믿고 '''키루스'''의 페르시아와 전쟁했더니 되레 패배해 리디아가 멸망했다. 신탁에서 말한 멸망한다는 대제국은 페르시아가 아니라 리디아였던 것.]하고 단 한 마디로 ''''아니''''[* 다른 설도 있는데, 당시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신탁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하나는 많은 돈을 받고 정식으로 써주는 신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적은 돈을 받고 예/아니오만 알려주는 약식 신탁이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요청한 소크라테스의 친구는 이 약식 신탁을 받아서 이렇게 딱 떨어지는 답을 받았다고도 한다.] 라는 신탁을 주었다고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여, 똑똑해 보이는 사람(정치인, 작가, 장인 등)들을 닥치는 대로 만나고 다니며 그들의 지혜를 시험해 봤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똑똑해 보였던'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혹은 편견)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그제야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자신이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자]]도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다. >유(=[[자로]])야, 안다는 것이 어떤지를 가르쳐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 ><논어> 위정편 17 하지만 비슷해보이기만 할 뿐 그 뜻은 매우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 계속하는 것을 말한것이다. 반면에 공자의 말은 전통적으로 2가지로 해석[* <논어집주>의 해석. 논어집주는 [[주자]]가 지난 2천년에 가까운 세월의 주석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되는데, 1. 수양론적 해석: 부족한 부분을 지나치지 않고 채워야 성인에 이른다는 해석이다. 부족한 지점을 알아야 그것을 채워서 완전한 경지에 이를 텐데, 이를 모르니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전과목을 만점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자신이 어느 과목이 약한지 모르는 것과 같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학자로써의 기본자세를 말한 것에 가깝다. 2. [[순자]]의 해석: 잘난척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해석이다. [[자로]]에게 공자가 조언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 해석이다. 자로는 용맹하지만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떄문에 하찮은 재주로 자랑해서 남들의 마음을 불편하게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했다는 것이다. 순자는 개인의 능력은 공동체를 위해서 필요할 때 나서야 의미 있는 것으로 본다. 위와 같이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매우 다른 사유와 접근법을 사용 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에 둘을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참고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져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살아생전 중요하게 여긴 말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The Philosophy Book》 by Dorling Kindersley(2010)] 청년 알키비아데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인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속 편한 알키비아데스, 부디 나의 말과 델피에 있는 글귀를 받아들여 '''자네 자신을 알도록 하게'''. 적수는 이들이지 자네가 생각하는 자(아테네 정치가)들이 아니니 말일세. 돌봄과 기술(앎)이 아니라면, 다른 그 무엇으로도 그들을 능가할 수 없을 걸세. 이것들을 결여한다면, 그리스 사람들 사이에서든 이방인들 사이에서든 자네가 명성을 얻는 일 역시 결여하게 될 걸세. 내가 보기에 어느 누가 그 무엇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네가 더 사랑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 명예 말일세." >---- >{{{#!wiki style="text-align: right;" '''김주일, 정준영 역, 《알키비아데스Ⅰ, Ⅱ》 이제이북스(200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