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경식 (문단 편집) === 기업 활동 === 1968년 귀국해 삼성 회장 비서실에서 삼성전자 설립에 기여했다. 1973년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이사로 옮긴 뒤 부친을 보좌하다 1976년에 부친 손영기 사장이 사망하자 1977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제일제당]]의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삼성그룹]]과의 분리 과정에서 제일제당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해결사로 활약했다. 삼성이라는 초거대 기업의 우산 아래서 떨어져 나온 제일제당이 큰 위기 없이 현재의 CJ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그의 역할이 컸다.[* 반면 멘토가 없었던 숙부 [[이창희(기업인)|이창희]] 집안이 경영하는 [[새한그룹]]은 결국 망했다.] [[이재현(기업인)|이재현]] CJ그룹 회장 또한 외삼촌이면서 자신의 '''경영 스승'''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그룹의 주요 결정이 있을 때마다 허심탄회하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CJ에서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한다. 1995년 [[제일제당]]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고 1996년 그룹 출범과 동시에 그룹 총수가 됐다. 2005년 11월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중도 사퇴하자 대신 회장직을 맡았다. 2008년, 3년 임기의 대한상의 회장에 재선임 되었다. 한국능률협회, 산업기술진흥협회, 식품공업연합회 등을 맡으며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온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재계와 정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이명박 정부]] 후반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 자리는 [[강만수]], [[사공일]] 등이 맡았던 자리이기도 하다.] 한국경제 홍보대사 역할도 잘 해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다만 대한상의 직원들로부터의 평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상공회의소 회장 재임 시 CJ그룹 회장직은 유지했지만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외조카인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실형 및 수감, 유전병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회장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사임하고 그룹 경영에 복귀해 비상경영 체제를 이끌었다. 2018년 3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되었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4대그룹의 전경련 복귀 의사가 없음에 따라 사실상 경총이 순수 민간 경제단체 대표역할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