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교 (문단 편집) == [[삼국지(정사)|정사]] == 형인 손유가 처음으로 군사를 통솔할 때 공의교위일 때 손교는 호군교위로 2천명을 이끌고 시작했으며, [[조조]]가 유수를 칠 때마다 달려가서 전공을 세우니 정예(精銳)라는 호칭을 얻고 도로정호장군이 되어 [[정보(삼국지)|정보]]를 대신해 하구를 다스리게 된다. 또한 [[황개]]와 형 [[손유]]가 죽은 뒤에는 그 둘의 군사도 합쳐서 거느리게 되는데다가 사선, 운두, 남신불, 경릉이 그의 식읍이 되고, 거기에 스스로 장리를 둘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게 된다. 손교는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베풀기를 좋아하면서 친구 사귀는데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제갈근]]과 친한 사이였고 부하 유정에게는 일의 득실, 이윤에게는 일반적인 사무, 오석, 장량에게는 군대를 맡기고 친구처럼 대하니 그들이 뼛속까지 충성했다고 한다. 한 번은 척후병들이 정찰을 나갔다가 위나라 땅에서 미녀들을 잡아다 바쳤는데, 손교는 오히려 여자들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돌려보내면서 말하길 >지금 우리가 주살하려는 자는 조씨(曹氏)이거늘 그의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지금부터는 그의 노약자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이 덕분에 장강과 회수의 많은 자들이 귀순했다. 술자리에서 [[감녕]]과 싸워 사이가 급격히 틀어졌는데, [[손권]]의 중재로 화해하고 다시 감녕과 친구가 된다.[* 그러나 이미 손교를 성격 급하고 싸움만 하는 인물로 만든 창천항로에서는 이 사건도 손교가 성격이 더러워서 감녕한테 감히 싸움을 건 인물이라면서 나온다. 다만 손교전에 의하면 감녕이 손교와 항렬이 하나 차이[* 즉 세대 하나 차이; 대략 10~12년 차이로 볼 수 있다.]나는데 예의가 없다고 따지며 여몽 휘하로 가기를 청하니, 이에 손권이 손교를 편지로 꾸짖는 것으로 보아 손교가 감녕에게 시비를 먼저 건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녕의 성향으로 보아 그냥 감녕이 도발한 건지도 모른다--] 유비가 촉에 들어간 뒤 [[익양대치]]에서 [[여몽]]이 편지 두 장과 공갈로 얻은 장사, 계양, 영릉 땅을 여몽의 명령으로 뒷처리를 한다. 후에 관우가 지키는 남군을 습격하려고 할 때 [[여몽]]과 함께 좌우도독이 되려고 했으나 여몽이 적벽대전 때 정보와 주유의 예를 들며 설명하자 손교는 후속 부대가 되어 형주를 정벌할 때 큰 공을 세우며, 219년에 세상을 떠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