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권/평가 (문단 편집) === 무예 === >[[장료]]가 항복한 오나라 장수들에게 물었다. > >"아까 보니깐 자줏빛 수염을 가진 장군이 있었소. 상체는 길고 하체는 짧고,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던데, 그게 누구요?" > >항복한 장수가 말했다. > >"그것은 손회계(孫會稽: 손권)입니다." >---- >헌제춘추 보통 [[장료]]의 [[안면인식장애]] 에피소드로 자주 언급되는 일화지만 여기서 우리는 손권이 무예로 장료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말을 들은 [[장료]]는 [[악진]]과 서로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다가 뒤늦게 추격했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 그런데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장료가 오의 군주인 손권의 얼굴같은 걸 알 리가 없으니 [[안면인식장애]] 운운하기 이전에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다.[* [[유비]]야 한때 [[조조]]와 함께 [[헌제]]를 섬긴 적도 있었으니 조조의 장수들도 교류한 적도 있어서 알아보기 어렵지 않았겠지만 손권은 기본적으로 적으로만 만난 데다가 건업에만 짱박혀 있던 탓에 사신으로 갔던 자나 만날 수 있었지 위의 장수들이 손권의 얼굴을 알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권은 중앙에서는 완전 듣보잡이었다.] >손권이 매양 사냥을 할 때면 항상 말에 타서 범에 활을 쏘니, 범도 항상 앞으로 돌진하여 말안장을 끌어 잡았다. >---- >장소전 >23년(218년) 10월, 손권은 장차 오군으로 가서 직접 말을 타고 능정에서 호랑이를 쏘려고 했다. 말은 호랑이에게 상처를 입었고, 손권은 쌍극을 던졌다. 호랑이가 상처를 입고 물러나자, 항상 따라다니던 장세(張世)가 창으로 공격하여 사로잡았다. >---- >오주전 또한 손권은 사냥을 직접 나섰다는 기록이 많이 보인다. 그냥 멀리서 깨작깨작 활 쏘는 수준이 아니라 가까이서 헤드샷을 날리는 식의 사냥이었던 걸로 보인다. 이때 호랑이가 손권이 탄 말을 공격하여 상처입히는 지경까지 가니, [[장소(삼국지)|장소]]는 그만 좀 사냥하라며 손권을 또 갈구고, 손권은 마침내 사냥을 그만두겠다는 약속까지 한다. 사실 군주가 사냥을 하는 건 그냥 심심풀이가 아니라 국가 행사나 마찬가지다. 단순히 군주만 혼자 사냥 가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 그들을 호위할 병사들, 필요 물자들까지 대규모로 동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냥을 가는 지역의 주민들은 생계가 중단된 상태로 사냥이 끝나기만 기다려야 한다. 심지어 사냥터를 만들기 위해 논가를 갈아엎는 것도 허다해서 백성들에게 가장 민폐를 많이 끼치는 일. 역사적으로 폭군들이 백성들에게 가장 원성이 자자했던 게 사냥이었다. 당장 같은 시대에 [[조비]]가 사냥을 지나치게 즐겨서 국가에 해악을 끼쳤고, 한반도 역사에서도 사냥을 너무 즐겨 민폐를 끼친 지도자들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충혜왕]]과 [[연산군]]이다. 괜히 군주가 '나 사냥갈래'하면 충신들이 일어나서 '아니되옵니다!'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치지 않았으니, 이에 범을 쏘는 수레를 만들어 이를 방목(方目)으로 삼고, 그 가운데 덮개를 두지 않고 한 사람에게 몰게 하여, 자신이 직접 가운데 사격하였다. 이때 뒤쳐지던 동물들이 번번이 다시 이 수레를 범접하였으나, 손권은 매양 손으로 쳐내는 것을 즐겨 했다. >---- >장소전 이처럼 손권은 용병은 능하지 못했지만 무예에는 소질이 있었다. 그는 마술馬術과 궁술에 능하여 합비에서 장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정도였고, 쌍극을 던져 달려드는 호랑이를 물리친 일화와 호랑이를 수레에서 맨손으로 쳐냈다는 기록도 존재할 정도다. [[포박자]] 같은 책에는 부적을 써서 화살이 그를 피해갔다는 표현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손권의 무술로 생각한다면, 이것도 나름 무서운 부분이다. 사실 아버지가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에 손꼽히는 [[명장]] [[손견]]이고 형 역시 강동의 소패왕 [[손책]]이다. 게다가 동생 [[손익]] 역시 무예가 뛰어났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동생 [[손부인]]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무예는 뛰어났을지언정 형과 아버지에 비해 군재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치명적이었다. 괜히 연의에서 손권이 형과 아버지와 달리 무골이 아닌 것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 것. 그가 발휘한 임기응변의 지혜의 예로는 [[유수구 전투 #s-2|212~213년의 유수구 전투]]의 일화가 있다. 싸움 중 궁병의 공격을 받아 수많은 화살들의 무게 때문에 배의 한쪽이 무거워져서 기우뚱하자, 배를 돌려 반대쪽에 화살들을 일부러 맞게하여 균형을 맞춘 다음에 탈출하였다. 그리고 이 기록은 연의에서 [[손견]]과 [[제갈량]]에게 뺏긴다. [[포박자]] 잡응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오병(五兵; 병기)을 피하는 방법을 물었다. 포박자가 대답했다. 오 대제(손권)는 개선생([[개상]])으로 부터 비결을 전수받았다. 북두(北斗) 글자와 일월(日月) 글자를 붉은 글씨로 쓰면 곧 칼날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 황제(손권)는 언제나 수십 명을 거느리고 선봉으로 나서서 적진을 함락시켰지만 끝내 몸을 상하는 일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