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권/평가 (문단 편집) === 동방 외교 === 손권은 요동의 독립 세력을 형성한 [[공손연]], 그리고 [[고구려]]와도 외교 관계 수립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보물과 함께 연왕으로 임명한 [[공손연]]은 머나먼 오나라보다는 가까운 위나라에 잘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사신의 목을 잘라 위나라로 보내고 보물은 자기가 가졌다. [[고구려]]에서도 공손연과 비슷하게 위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는지 사신 호위의 목을 잘라 위나라로 보냈다. 이 부분에서는 손권의 발상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 없다. 병법에서 흔히 말하는 遠交近攻([[원교근공]])에 맞는 행동이다. 만약 잘되었다면 위로서는 전선을 늘려야 하고 상대할 곳이 완전 양극이니 나름대로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적으로 바다 건너 수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애초에 오나라는 바로 옆에 있는 [[촉한]]과도 군사 공조가 제대로 되지 않는 판국이었다. 비록 요동으로 10,000명을 보내고 공손연이 멸망할 때 군사를 보냈으며 239년에는 요동에서 위를 공격하는 등 멀리 있었다해도 도움이 될 여력은 충분히 있었으나 당시 고구려나 공손연 입장에서는 바로 코 앞에 있는 위나라가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는 것. 사실 초반에는 공손연과 어느 정도 이러한 이상적인 우호 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32년에 위나라가 오나라와 양다리 걸치는 공손연을 잡으려 했고,[* 이 과정에서 [[전예]]가 바닷가에서 대기타다가 공손연에게서 말을 사서 돌아가던 애꿎은 오나라 사신단을 족쳤다. 해당 문서 참조.] 이에 위나라와 척을 진 공손연이 손권에게 과감히 칭신하면서, 그리고 위에서 본 것처럼 도로 손권에게 빅엿을 날리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공손연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정주를 지원군으로 보내는 [[대인배]]의 모습도 보여주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공손연이 참패해버려 공손연과의 연계는 끝이 난다. 당시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고 신하들도 말린 일을 손권이 터무니 없는 고집을 부린 끝에 망신만 당한 셈이다. 고구려와 교린할 때는 "오나라가 위나라보다 강하다."는 터무니 없는 뻥까지 쳐가면서 엮으려 들었으니 될 리가 있나. 섣불리 멀리 있는 나라와 군사 협력을 시도하기보다 위나라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우호 교린을 하는 방향이었다면 차라리 결과가 나았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