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손봉전쟁 (문단 편집) === 2차 제노전쟁 === 1924년의 [[2차 직봉전쟁]]은 [[펑위샹]] 등이 [[북경정변]]을 일으켜 대총통 [[차오쿤]]을 축출하는 내응을 통해 [[장쭤린]]의 [[봉천군벌]], [[돤치루이]]의 [[안휘군벌]], 펑위샹의 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이들은 [[중국 국민당]]의 영수 [[쑨원]]을 초빙하는 한편 [[돤치루이]]를 임시집정으로 추대하여 새로운 임시정부를 조직했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하고 민치의 기반을 닦으라는 세간의 염원과는 달리 명목상의 [[선후회의]]를 개최하여 자파의 세력 강화에만 집착할 뿐이었다. 한편 [[강절전쟁]]으로 일본으로 망명을 떠났던 안휘군벌의 [[루융샹]]은 2차 직봉전쟁을 계기로 귀국하게 되었다. 장쭤린은 장강 유역의 각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실로 톈진회의를 소집, 루융샹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강소와 안휘 2개 성을 안휘군벌에 속하게 하여 루융샹이 지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돤치루이에게 제안했다. 루융샹의 병력을 봉군이 수송해주고 경비까지 부담하겠다는 장쭤린의 제안을 돤치루이는 수용하였다. 돤치루이는 1924년 12월 11일 강서성장 한국균에게 강소독군을 겸임하게 하는 한편 [[치셰위안]]을 면직시키고 루융샹을 소환선무사에 임명하여 [[직예군벌]]인 전 강소독군 치셰위안을 토벌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장쭤린은 장강 유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야욕에 12월 12일 [[장쭝창]]에게 군대를 주어 루융샹을 돕게 했고 2차 [[제노전쟁]]에서 치셰위안은 패배하여 일본으로 달아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