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손봉전쟁 (문단 편집) === 쑨촨팡의 역습 === 10월 10일, 쑨촨팡은 태호추조, 즉 태호에서 실시하는 가을 군사훈련을 핑계로 전군 발동 명령을 내리고 휘하 부대에 상하이와 난징을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10월 15일, 오성연군 총사령관에 취임한 쑨촨팡은 소속 부대를 5로로 나누어 총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먼저 4사단이 송강에서 형사렴이 지키는 상하이를 공격했다. 난데없는 침공 소식을 들은 양위팅은 중과부적으로 쑨촨팡을 당해낼 수는 없으니 병력을 보전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 여겨 형사렴에게 상하이에서 철수할 것을 지시했다. 10월 16일 쑨촨팡은 상하이에 무혈입성하고 쑨촨팡, 하초, 주음인의 연명으로 장쭤린을 성토하는 통전을 보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봉군은 살인과 약탈로 우리 인민을 고달프게 하였다. 추하고 더러운 행동을 한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그들은 많은 피를 뿌리게 해 중외에 비웃음을 사고 있다. (...) 때가 오늘에 이르러 나 쑨촨팡은 참을 수 있어도 병사들은 참을 수 없고, 병사들은 참을 수 있어도 인민들은 참을 수 없다. 오로지 장쭤린 한 사람만 토벌하면 된다.|| 10월 19일에 손군이 진강을 점령하여 난징을 위협했고 20일에 난징성벽 바로 밑에 이르렀다. 당황한 양위팅은 독군서에서 강소군 장령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양위팅은 천댜오위안, 백보산, 마옥인 등에게 평소와 다르게 예의바르게 대책을 청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양위팅에게 원한을 가지고 쑨촨팡과 결탁한 상태였다. 회의 내내 강소군 장령들은 양위팅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회의는 좋지 않은 분위기로 끝났고 양위팅은 참모장 [[짱스이]]와 상의하여 정희춘의 부대를 난징에서 철수시켜 전멸당하는 것을 피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정희춘의 부대가 움직이기도 전에 천댜오위안이 이를 눈치채고 방판의 명의로 연회를 베풀어 정희춘과 휘하 대대장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그리고 이들에 술에 취한 틈을 타서 모조리 체포하여 정희춘 부대를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무장해제시켰다. 사태가 완전히 글러먹은 것을 알게 된 양위팅은 비밀통로를 이용하여 난징을 탈출했고 강북 포구에서 기차를 타고 봉천으로 달아나며 [[장덩쉬안]]에게 연락하여 철수할 것을 지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