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손책 (문단 편집) === [[원술]] 휘하에서 === 194년, 거의 모든 손견 휘하의 장수들이 그러한 것처럼 손책은 [[원술]] 밑으로 들어가 벼슬살이를 한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책이 지름길로 가서 수춘에 가서 원술과 만나 눈물을 흘리며 부친 손견과 원술 간의 옛 인연을 언급하며 등용해달라고 한다. 원술이 그가 매우 뛰어나다 여겨 손견의 옛 부곡들을 손책에게 돌려주었다. [[원술]]과 [[손견]]을 대등한 위치에서 서술한 [[삼국지연의]]에 익숙한 사람들은 원술은 손견에게 [[유표#s-1|유표]]를 치도록 부탁해 유표에게 죽게 했는데 손책이 아버지의 원수 같은 원술 밑으로 들어가다니 불효막심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정사에서는 손견은 원술의 수하의 위치였다. 원술은 그런 손책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손랑과 같은 아들이 있으면 두려울 게 없겠다'고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제한적인 관직에 임명하고 전선에 내보내는 등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썼다. 강표전에 따르면 원술이 손책을 귀하게 여기긴 했지만 아직 그의 부친 손견의 병사를 돌려주려 하지는 않았다. 원술이 손책에게 손책의 친척인 오경과 [[손분]]을 각각 단양의 태수와 도위로 삼았으니 그 땅에서 병사를 모아보라고 한다. 손책이 단양으로 가서 외숙에게 의지해 수백 명을 얻었는데 경현(涇縣)의 대도적 수령 [[조랑]]에게 기습당했고 [[정보(삼국지)|정보]]와 그 휘하 기병 1기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는다. 그러나 병사를 모두 잃었고 이에 다시 원술에게 가니 원술이 손견의 잔여 병력 1천여 명을 손책에게 돌려주었다. [[마일제]]가 수춘에 있을 때 손책을 천거하면서 표를 올려 회의 교위로 임명하도록 하자 손책은 원술 휘하의 장수인 [[교유]], [[장훈(삼국지)|장훈]] 등의 공경을 받는다. 원술은 "이 원술에게 손랑(孫郞) 같은 자식이 있다면, 죽어서도 다시 무슨 한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어느날, 손책의 기병 병사가 죄를 짓고는 원술의 진영으로 도망쳐 들어가 안쪽 마구간에 숨었는데 손책이 사람을 시켜 가서 참수하게 하였다. 일이 끝난 후 원술에게 가서 사과하자 원술은 "병사들은 반란을 일으키기 좋아하는데, 응당 같이 그런 자를 미워해야지, 어찌해서 사과까지 하오?"라고 말했고 이후 군중의 사람들이 손책을 더 두려워했다. 손책은 이전에 원술로부터 구강 태수의 지위가 약속되어 있었으나 원술은 나중에 바꾸어 단양의 [[진기#s-1|진기]](陳紀)를 등용하여 삼았다. 원술은 [[유비]]와의 싸움에 앞서 여강 태수 [[육강]]([[육손]]의 숙조부)에게 군량을 청했으나 그가 이를 거부하자 분노한다. 손책이 예전에 육강에게 갔을 때 육강이 직접 만나주지 않고 주부(主簿)를 시켜 접대하게 해서 손책이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으니 원술은 손책을 보내 육강을 공격하게 하였고 그에게 여강태수직을 약속한다. 손책은 2년의 여강 공성 끝에 육강을 격파하나 원술은 약속과는 달리 [[유훈#s-2|유훈]]을 임명한다. 당연하지만 이렇게 두 번이나 약속된 태수직을 받지 못하자 이에 실망하고 원한을 품어 빡친 손책은 원술로부터 독립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