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성씨) (문단 편집) ===== 야성 송씨[* 야로 송씨라고도 한다.] ===== 고려 목종(穆宗)때 간의대부(諫議大夫) 총부의랑(摠部議郞) 등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진 '''송맹영(宋孟英)'''을 시조로 하고 있다. 야성(冶城)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冶爐)의 별칭인데 이때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야성으로 하여 경상도 야로현에 정착해 살았다. 시조 송맹영의 아들 송창(宋昌)은 고려조에서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냈고, 손자 송우(宋瑀)는 문림랑(文林郞)으로 소부소감(小府少監)을 역임하였으며 아들 송인서는 상서호부(尙書戶部)에 올랐으며 송구(宋構)가 경기감사와 어사(御使)등을 역임하였고 송길창(宋吉昌)이 또다시 공민왕 때에 세운 공로에 힘입어 다시한번 야성군에 재차 봉해진다. 경상북도 성주군 송천으로 이거하여 14세에 이르러 직장공파·상호군공파·대호군공파·현령공파·선전공파 등으로 갈라졌다. 송광심(宋光心)은 문과급제하여 병조정랑 등을 지냈으며 성리강요를 저술했다. 숙종대에 송원기(宋遠器)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올랐으며 송희규(宋希奎)는 흥해군수와 장령, 상주목사 등을 지냈고 송광정(宋光井)은 장원급제하여 권지학유에 취임하고 동학교수와 성균관직강이 되었다가 군수로 부임하고 사헌부장령 형조낭관등을 지냈다. 송천흠(宋天欽)은 용양위부호군과 상주목사를 지냈으며 선정을 베풀어 관민의 칭송을 받았다. 송준필을 비롯한 후손 11명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상하여, 독립 유공 가문으로 이름이 높다. 송규(宋奎)는 원불교(圓佛敎) '''제2대 종법사(宗法師)'''다. 2015년 기준 인구 20,201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