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근유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에서의 용도 === 2차대전 말기 미국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일제는 자원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원래 [[석유]]의 90%가량을 미국에서 수입하였는데 이제 그 물주와 대결하는 꼴이 되었으니... [* 사실 일본 해군은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식민지인 [[한반도]] 일대에서 초대량으로 잡히는 [[정어리]] 같은 물고기를 쥐어짜서 얻는 물고기 기름으로 석유를 충당한다는 충격적인(…) 계획이 있었다. 실제로도 수요의 절반 정도까지는 대체가 가능했다고. 그런데 갑자기 물고기 어획량이 [[개발살]]나는 바람에 기름 부족에 처했다.] [[남방작전]]을 통해 동남아의 석유 생산지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전쟁 말기쯤 가면 남방 점령지와 본토는 미군의 필리핀 탈환으로 사실상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있으나마나였다. 이 상황에서 1억 총옥쇄를 부르짖던 일제 수뇌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료를 구하고자 했고 기름이란 기름은 다 짜냈다. [[카놀라유|유채 기름]], 정어리 기름, [[귤]]껍질 기름 등 온갖 바이오 오일이 닥치는대로 동원되었고 송근유도 그 중 하나였으며 심지어 사람의 [[피지]]([[개기름]])까지도 징발해서 연료로 사용했다. 본래 송근유는 그 쓰임이 많았기 때문에 일본에 생산하는 민간 업체가 꽤나 있어서 임업시험장에서 송근유를 원료로 [[항공유]]를 제조하게 되었다. [[1944년]] [[10월 20일]]에 최고전쟁 지도회의에서 송근유 등 긴급증산대책 조치요강이 결정되었으며, [[1945년]] [[3월 16일]]에 각료회의에서 결의되었지만 원료인 벌근의 발굴과 소나무의 벌채엔 막대한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제는 전국적으로 봉사--라고 쓰고 강제노동이라고 읽는-- 벌근 채취 활동을 벌였다. 심지어 야타베 해군항공대의 연습항공대 학생들도 차출되었는데 이때 예비학생 14기로 종사했던 전 카노야 해군항공대 쇼와대 소속의 스기야마 유키테루 소위는 당시 "이런 걸 발굴해서 언제까지 버티려나..." 하고 저서에 술회하기도 했다. [[센다이시]]의 소나무 가로수길에 늘어선 수령 300년 이상의 소나무도 벌목을 당했으며 소나무 천국인 [[식민지]] [[일제강점기|조선]]도 당연히 채취 지역이었다. 당시 어린 아이였던 대한민국의 할아버지들에게 그때의 일을 물어보면 학교에서 하라는 수업은 안 하고 산을 돌아다니며 소나무를 베어오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이 내용이 등장한다. [[청도군]] [[운문사]] 일대의 소나무들이 죄다 밑동이 파인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얻어진 벌근을 처리하기 위해선 대량의 건류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계획 전에 2,320개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1945년 6월까지 46,978개로 대폭 증가시켰다. 이것들은 산지 근처의 마을에 설치되어 대량의 송근조유를 제조했으며 그 양은 20만 킬로리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이렇게 야매로 만들어진 조유들은 근처의 정제공장에서 경질유와 그 외 성분으로 나뉘어졌으며 그 중 경질유는 따로 모아져 주로 [[미에현]]의 [[욧카이치시]]와 [[도쿠야마시]]의 해군 제2, 3 연료창의 본격적인 정제 시설에서 항공 휘발유와 배합하여[* 통상적으로는 송근 추출 경질유 10%:항공 휘발유 90% 의 비율로 제조하였다.] 항공유로 제조되었다. 그러나 욧카이치시는 거듭된 공습으로 인해 공정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으며 도쿠야마에서도 1945년 [[5월 14일]]부터 고작 500kL를 생산했다고 한다. 원유를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서도 정제를 못해서 놀리고만 있는 상황이었다는 건데 군부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이는 전쟁 전인 1935년의 생산량인 6000kL의 발끝에도 한참 못 미치는 실적이다. 만들어진 송근유들은 시험을 거쳐 1945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될 것이었으나 아시는대로 일본이 미국에게 [[핵무기|결정타 두 방을 얻어맞은 관계로]] 이전에 전쟁이 끝났다. 덕분에 전후에도 많은 양의 송근유가 남아 있었는데 [[GHQ|진주한 미군]]이 조정되지 않은 [[휘발유]]를 그대로 [[지프]]에 넣었더니 며칠만에 엔진이 고장나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기술이 J. B.코헨의 <전시전후 일본경제>에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그 알맹이가 어떨지는 뻔하다. 결국 이렇게 폐급 기름이 되어 버린 송근유들은 어선의 연료로 쓰이면서 소모되었다고 한다. [[오키나와]]에선 더욱 황당한 사례가 나타났는데 [[오키나와 전투]] 이후 가난한 환경에서 엔진오일로 모빌 [[덴뿌라]](モービル天ぷら)라는 튀김까지 해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송근유를 포함해서 '''각종 동식물에서 기름이란 기름은 다 짜내서''' 만든 엔진오일이었기 때문에 식용이 불가능하진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증언에 따르면 [[엑손모빌]]의 진짜 엔진오일로도 튀김을 튀겼고 그래서 모빌 덴뿌라라고 불렸다고 한다.[* 실제로도 먹고 죽은 사례가 존재한다. 복통이나 구토 등은 기본이었다고.][[https://www.dee-okinawa.com/topics/2015/07/mobil.html|#]] 이때의 흔적으로 영동 지방 동해안 소나무 숲을 가 보면 조금 커보이는 소나무에는 모두 [[시멘트]]를 바른 듯한 모양의 상처가 나 있다. 안 죽은 것이 기적. 영남도 예외는 아니다. 또 이전부터 소나무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던 일본은 이후 소나무 사망률 100% 소나무재선충으로 인해 홋카이도를 비롯한 수림 보호에 신경을 쓰는 일부 지역을 빼고 아예 전멸해 버렸다. 대한민국은 소나무를 필사적으로 보호한 반면 일본은 소나무 대신 삼나무를 귀히 여겼기 때문에 소나무재선충 방재에 무관심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