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림시 (문단 편집) == 특징 == 송림(松林)은 소나무 숲이 우거졌다고 하여 붙은 지명이며, 시내의 최고봉인 송림산(187m)의 이름이기도 하다. 본래 [[황주군]] 소속으로 [[대동강]]변의 한 포구였다. 분리 이전의 역사는 [[황주군]] 문서 참조. [[청일전쟁]] 때 이 곳에 상륙할 항구의 건설을 맡은 일본 장교였던 [[https://ja.wikipedia.org/wiki/%E6%B8%A1%E8%BE%BA%E5%85%BC%E4%BA%8C|와타나베 켄지]](渡辺'''兼二''', 1866~1928)의 이름에 포(浦)를 붙인 겸이포(兼二浦; けんじほ; 켄지호)면이라는 이름으로 1917년에 송림면 일부 지역을 분리하고, 1931년 읍으로 승격했다. 1942년 송림면을 겸이포읍에 편입하고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겸이포읍을 송림읍으로 개칭했으며, 1947년 북한 치하에서 황주군에서 떼어내 송림시로 승격했다.[* 출처 : 북한총람(1968), 황해도지(1981), 황해도민월남사(1996)] 광복 당시 면적 51.53㎢이었다. 전형적인 공업도시로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미쓰비시 그룹|미츠비시]]가 건설한 황해제철소(前 겸이포제철소)가 있으며, 1998년 8월에 [[송림제철소 학살 사건|탱크가 동원된 숙청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송림광산에서는 [[석회석]]을 산출한다. [[사리원시]]처럼 [[대한민국]]의 [[이북 5도]]청에서 일제강점기와 다른 행정구역을 인정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례이다. 이유는 [[사리원시]]와 같이 [[6.25 전쟁]] 당시 송림시를 [[대한민국 국군]]이 점령하면서 송림시장을 파견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복 당시의 겸이포라는 명칭은 일본 군인의 이름을 딴, [[김형직군|북한의]] [[김정숙군|4대]] [[김형권군|우상화]] [[김책시|지명]]급이라 그대로 사용하기 껄끄러운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2017년 7월 9일에 규모 2.9의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환경오염|시커멓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