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만갑 (문단 편집) == 예술세계 == 송만갑의 음색은 거친 수리성에 단단한 철성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만큼 통성으로 전력을 다해 내지르는 면모가 보이며. 여기에 상청의 음역을 중심으로 소리를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상청까지도 가성이 아닌 통성을 구사하는 것을 '외장목'이라고 한다.(전인삼)] 소리를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식으로 이야기 하면 키가 남들보다 높은데다 최고음에 해당하는 시상청마저도 통성을 주로 쓴다는 점에서 동시기에 역시 고음으로 유명했던 이동백(李東伯, [[1897년]]~[[1949년]])과는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은 당대에도 여러모로 라이벌로 꼽혔던 듯 싶다. 그들 자신도 서로를 라이벌로 인식했는지 만나면 고음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고.(...)] 또 저음에서 시작해 급작스레 고음으로 뛰어 오르는 음의 변화는 그의 장기 중 하나로 꼽혔다. [youtube(_7rtme0xbZM)]그의 장기 중 하나인 적벽가 새타령. 그의 나이 49세 때의 녹음이다. 57초 부분부터 간간히 나오기 시작하는 새소리를 들어보자. ~~새 한마리 잡아온거 아닌가?~~ 다섯 바탕 소리를 두루 잘한 것으로 유명한데, 《심청가》의 경우 본래 그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중 하나였으나 중년에 상처(喪妻)한 이후 아내 생각으로 부르지 못하고 그 대신 《흥보가》를 불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꽤나 애처가였던 듯. 디스코그라피 역시 다섯바탕이 두루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은 것은 《춘향가》와 《적벽가》, 《흥보가》이며 《심청가》, 《수궁가》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다. 현재 그의 소릿제로 전해지는 것이 《적벽가》[* 박봉래를 거쳐 그 동생 박봉술에게로 이어진 바디로 현재까지도 가장 대표적인 적벽가 바디로 손꼽히고 있다.], 《흥보가》[* 3가지 버전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박봉술에게로 이어진 갈래가 있고, 김정문을 거쳐 박녹주에게 이어진 갈래가 있으며, 역시 김정문을 거쳐 강도근에게 이어진 갈래가 있다. 이 가운데 박녹주와 강도근이 보유한 사설은 대동소이하고, 박봉술이 보유한 사설은 다소 차이가 있다.], 《수궁가》[* 박봉술을 거쳐 현재는 송순섭에게 이어지고 있다.]라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심청가는 중년 이전 송만갑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였던 것에 비해 그의 녹음 이외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어 동편제 심청가 자체의 맥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점에서 아쉽다.[* 김연수는 자신이 새로 짠 심청가가 동편제라고는 했지만 확실하지 않다. 무엇보다 김연수가 짠 심청가는 동편제라기 보다 신재효본과 강산제 심청가와 더 유사하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반면 춘향가의 경우 박봉술 사후 잊혀져 있다가 그가 남긴 음원이 국악학자 이보형 등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면서 그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고, 현재는 박봉술에게서 한 때 소리를 배운 전인삼이 자주 부르고 있다.[* 단, 박봉술의 춘향가가 얼마나 송만갑의 그것과 근접해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어사 출도 대목 같은 경우에는 정정렬제로 대체되어 있기도 하고, 송만갑의 녹음과 비교해 상이한 부분도 제법 발견되기 때문이다.] 조선성악연구회에 참여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렀는데 장판개, 박중근, 감정문 등은 그 가운데 선배 그룹으로 꼽힌다. 특히 장판개의 경우에는 송만갑의 소릿제를 비교적 충실이 구사한 것으로 유명한데 송만갑이 자주 불렀다는 단가 진국명산을 녹음한 바가 있어 서로 비교가 가능하다. 그 외에 박녹주 역시 비교적 송만갑의 소릿제를 잘 구사한 명창으로 이름이 높다. 박녹주는 당시 정정렬이나 이동백 등에게도 소리를 배우는 등 조선성악연구회 활동에 매우 활발히 참여하고 있었으며, 성음 자체가 남성적이어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창극 녹음에서 남자를 맡은 적도 있다.[* 정정렬이 도창해 녹음한 빅터 판 창극 춘향전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 이 녹음에서 이몽룡 역은 [[임방울]]이 맡고 있었으나, 당시 김소희와 함께 정정렬에게서 소리를 배우고 있었던 박녹주가 이별가 대목에서는 이몽룡 역을 맡고 있다.] 그 외에 박봉술, 강도근 역시 송만갑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박동진(국악인)|박동진]]이나 [[김소희(판소리)|김소희]] 역시 송만갑에게서 배운 바 있다.[* 단, 박동진의 경우에는 단가 진국명산과 몇몇 토막소리를 위주로 배웠다고 한다. 김소희의 경우에는 당시 박녹주와 함께 조선성악연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 하고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 자신이 송만갑의 십장가를 듣고 매료되었다고 누차 이야기 하기도 했고.] 이 가운데 박녹주, 박봉술, 강도근은 모두 송만갑제 소리로 중요무형문화재(現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박녹주는 이들 가운데 키가 조금 낮은 편이지만 장단을 구사하는 방식이 송만갑의 소릿제를 충실히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박봉술은 상청을 중심으로 하는 소리 구사, 강도근은 철성을 위주로 구사하는 창법 등이 송만갑의 소릿제와 닮아 있다고 한다. 특히 강도근은 송만갑이 시상청의 고음에서도 통성을 고수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음을 구사하고 있다. 박봉술이 일찍 목이 망가지면서 가성을 섞은 희성으로 소리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 사실 박봉술은 장단의 부침새를 다양하게 준다는 점에서 송만갑의 그것과 또한 차이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