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문공 (문단 편집) ==== 불안한 초기 ==== 송문공 원년(기원전 610년), 봄 [[진(춘추오패)|진(晉)나라]]의 장수 순림보(荀林父)[* 사람 이름이나 아버지 이외의 호칭으로 쓰일 때는 父는 甫와 통하므로 보라 읽는다.]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의 공달, [[진(춘추전국시대)|진(陳)나라]]의 공손 녕, [[정나라]]의 석초가 송나라를 쳤다. 그 구실은 바로 송 문공이 송 소공을 살해한 죄를 묻기 위해서였다. 이것을 안 송 문공은 그것이 합법적이었음을 말하니 연합군은 철수했다. 송문공 2년(기원전 609년), [[송무공]], [[송목공]], [[송대공]], [[송장공]], [[송환공]]의 후예들과 송소공의 아들은 송문공의 동복 아우인 사성 공자 수를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12월 송 문공은 공자 수와 송소공의 아들을 죽이고 송대공, 송장공, 송환공의 자손과 사마 자백의 빈객들은 송무공의 일족을 쳤고 송 무공, 송 목공의 일족은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공손 사를 사성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공자 조가 죽자 악려를 사구로 봉해 민심은 안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