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문공 (문단 편집) ==== 송 문공의 대 위기 ==== 송문공 15년(기원전 597년), 초나라의 왕인 [[초장왕]]은 송나라가 소나라를 구원하자 송나라를 쳤다. 송문공 16년(기원전 596년), 초나라의 사자 신주(申舟) 즉 신무외(申無畏)가 제나라로 가는 길에 송나라를 지나자 송나라는 오랜 원수인 초나라가 미워 신주를 포박했다.[* 신무외가 신주로 이름을 바꾼 까닭은 신주가 송나라를 쳐서 송나라의 원한이 컸으므로 그 상황을 최대한 피해보려 함이었으나 결국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이때 신무외가 죽었다고 한다.] 9월 초장왕이 크게 노해 송나라를 포위했다. 송문공 17년(기원전 595년), 초군은 송나라를 5개월 간 포위했다. 송나라의 도성은 식량이 떨어져 대 위기에 봉착했다. 송 문공은 악영제를 사신으로 보내 진(晉)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진(晉)나라의 군주인 [[경공(진)|진경공]](晉景公)은 송나라를 구하려 했으나 대신 백종의 건의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초나라에 투항했다. 5월 초장왕이 항복을 받아들여 철군하려 했으나 신주의 아들인 신서(申犀)가 그 철군에 반대했다. 그리고 계책을 내서 초장왕이 포진을 하며 버텼다.[* 그게 다름이 아니고 [[둔전]]을 하는 것이다.] 이에 송문공은 더 버틸 수 없어서 화원을 초군 진영에 밤중에 몰래 보내 초의 재상인 자반에게 사정을 전해주고 그 자반은 초 장왕을 찾아가 보고했다. 이에 초장왕이 화원에게 물었다. "성안 사정은 어떠하오?" 화원이 대답했다. "인골을 땔감으로 쓰고, 각기 자녀를 교환해 먹을 지경입니다." 초장왕이 말했다. "자반의 말이 틀림없구먼. 아군도 실은 식량이 2일 밖에 없소." 그리고 화원을 믿고 포위를 풀어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