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환공 (문단 편집) === 제환공과 초나라를 치다 === 송환공 25년(기원전 657년), 송환공은 제나라, 강나라, 황나라, 3국의 군주와 양곡에서 만나 초나라를 치려했다. 송환공 26년(기원전 656년), 정월 제환공, 송환공, 노희공, 진선공, [[위문공]], 정 문공, 허목공, 조소공과 함께 채나를 치니 채나라가 패했다. 그리고 초나라를 치기 위해 형 땅에 주둔했다. 여름 [[초성왕]]이 굴완(屈完)을 보내 제후군 진영으로 가서 회맹에 참여했다. 12월 노나라의 공손자가 제나라, 송나라, 위나라, 정나라 군대와 함께 진(陳)나라를 치니 진(陳)나라가 화평을 요청했다 송환공 27년(기원전 655년), 송환공이 노 희공, 제환공, 진선공, 위문공, 정문공, 허희공, 조소공과 함께 수지에서 회맹했다. [[혜왕(주)|주혜왕]]의 태자 희정(姬鄭)[* 훗날의 [[양왕(주)|주양왕]](周襄王)이다.]을 만났다. 그 이유는 주 왕실의 안정이었다. 송환공 28년(기원전 654년), 여름 송환공은 제환공 등 여러 제후들과 함께 정나라가 회맹에서 배신한 죄를 묻기 위해 정나라의 신밀 땅을 포위했다. 이에 초성왕은 허나라를 포위해 정나라를 구했다. 제후들은 허나라를 구하러 가서 초나라는 회군했다. 송환공 29년(기원전 653년), 7월 송환공은 노나라, 제나라와 영모 땅에서 회맹했다. 그 때 정나라를 치려 했다. 송환공 30년(기원전 652년), 정월 송환공은 주 왕실에 사자, 노희공, 제환공, 위문공, 허희공, [[조공공]], 정나라 세자 관과 조 땅에서 회맹했다. 겨울에 송환공이 병이 들자 태자 자보(子父)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 주려 하니 태자 자보는 서형인 공자 목이(目夷)에게 양보하려 했다. 3번이나 그랬음에도 공자 목이는 끝끝내 거절했다. 송환공 31년(기원전 651년), 3월 정축일 송환공이 병으로 죽어 태자 자보가 그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송양지인]]으로 유명한 [[송양공]](宋襄公)이다. [각주] [[분류:송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651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