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쇄국 (문단 편집) === 전근대 === 현대적인 사회에서는 생활에 필수적인 생산품을 충족함에 더 나아가 특정 생산품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면서 다른 부족한 요소는 다른 사회에서 받는 것으로 해결하는, 생산력을 극대화 한 시스템이기에 지금과 같은 무역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전근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교한 구조가 불가능하다. 애초에 배를 타고 원양항해를 하는 것이 매우 위험했고 도로도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교한 유통이 불가능 했기 때문이다. 전근대적인 국가에서는 무역을 통제하려고 시도했다. 이는 전근대사회의 산업과 관련된다. 위에 말했다시피 산업혁명 이전의 사회에서는 전문적인 생산 시스템과 유통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급자족적인 생산이 기본이였다. 자급자족 사회는 모든 생산과 소비가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 때문에 폐쇄적이며, 전문적인 생산인력이 없다는 의미는 유출되기에 충분한 생산분의 확보가 불가능 하다. 때문에 무역을 한다는 것은 내부에서 소비해야 할 부가 유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의식주가 내부에서 충족되는 자급자족인 사회에서 외부로 부터 받을 만한 것은 사치품이나 원료, 특산품 정도인 것도 문제. 예를 들어 A라는 자급자족 사회에서 100명이 120인분의 생산을 한다고 했다고 가정 했을 때 20인분의 잉여 생산분을 수출하여 40인분의 가치를 얻었다고 가정 했을 때, 전체적으로는 140인분의 가치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설령 20인분만이 팔렸다고 할지라도 100인분의 필수분이며 생산은 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40의 가치는 사회 내에서 교환을 가질 수 없으며 욕구 충족을 위한 사치품이 될 수 밖에 없다. 당장 대항해시대를 만들었다는 후추를 보자. 더욱이 공무역이(즉 [[조공무역]]등의 국가무역) 아닌 사무역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사무역이 계산기 마냥 20인분만 딱 딱 팔리는 건 불가능하다 볼 수 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더 팔려 99인분의 생산만 가지는 순간 생산품의 가치는 1명분의 목숨값 만큼 오를것이다. 즉 사무역의 통제 불가는 물가가 요동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헤이안시대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국가에서 목숨걸고 견당사 보내면서 당나라와 교류했는데 근래들어 당나라 상인들이 사적으로 교역하는 너무나 많아 물가가 요동치니 사무역을 드디어 통제한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멀리 갈 것 없이 근대를 보더라도 [[아편전쟁]], 영국은 고작해야 농본주의 자급자족하는 사회인 청나라에 딱히 팔 상품이 없었고 엄청난 무역적자에 영국이 보유한 은이 빨려 나가자 마약으로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례또한 존재한다. 국가가 사무역을 통제하는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위의 예와 같이 120인분의 가치를 140인분의 가치를 낼 수 있듯 무역은 부를 가져온다. 하지만 그것은 중앙정부, 국가 외에 세력이 경제력, 즉 힘을 가진다는 문제가 있다. 해상왕이라 불리는 장보고 등, 대외 무역이 가장 활발하여 중동과도 교역했다는 것으로 유명한 신라시대'''말기'''. 안사의 난 이후 재정 확보를 위해 사무역이 발전한 당나라. 그 당나라와 사무역이 활발했던 헤이안시대, 그리고 유럽과 교류했던 전국시대 다이묘들 등의 예를 보면, 모두 율령시스템이 혼란해지고 중앙정부가 통제력을 상실. 지방의 세력이 힘을 기르기 시작했던 시기와 매우 의미심장하게 일치한다. 특히 에도시대의 쇄국정책 일본이 날뛰던 지방 다이묘들의 개인적인 무역을 금지하고 [[데지마]]에서 네덜란드와 막부만이 직접 교역하도록 허락 것은 종교적 이유보다는 바로 이런 다이묘들의 재정을 통제하려 한 이유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예외로 서양의 대항해 시대와 유목민들의 경우 상업이 활발했는데,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해 사무역을 통제하는 것이 힘들었고, 지리적 여건으로 생산이 부족 하여 자본으로 때워야 했다는 배경 등이 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경우 산이 많아 농업하기에 불충분하거나, 네덜란드의 경우 독불영의 사의 중심에 위치한 입지, 이탈리아의 경우 십자군전쟁등의 배경 등) 송나라의 경우도 무역이 활발했다고는 하나 무역 장려의 원인은 북송 초기나 남송시대의 혼란에 의한 재정악화에 있으며, 금전에 직결되는 구리등의 자원의 수출을 통제하거나 등 여러모로 무역을 통제하고자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